[데스크의눈] “다시는 혼자 되지 않을 결심”
동맹 없어 당한 사례 교훈 절실
韓, 지정학적 안보 취약성 높아
한·미동맹 강화로 불안 지워야
북유럽 에스토니아는 작은 나라다.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 1쯤이고 인구는 약 130만명으로 우리 울산보다 좀 많다. 러시아, 스웨덴, 독일 등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낀 탓에 고난의 연속이었다. 16세기 중반부터 150년간 스웨덴, 다시 18세기 초부터 200년간 제정 러시아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 독립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소련(현 러시아)과 나치 독일의 각축장으로 전락했다가 결국 소련에 병합됐다. 냉전 종식과 소련 해체를 계기로 1991년에야 광복을 맞이했다.
지난해 7월 에스토니아를 찾은 외국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들 앞에서 칼라스 총리가 행한 연설이 흥미롭다. 그는 “1991년 국권을 회복했을 때 우리는 결심했다, 다시는 혼자가 되지 않기로(Never alone again)”라고 외쳤다. 2차대전 발발 후 소련이 에스토니아에 병합을 강요할 때 변변한 동맹국이 없어 속수무책 당한 점을 결코 잊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에스토니아에는 영국군을 필두로 나토 동맹국들 군대가 주둔하며 이 나라 안보를 떠받치고 있다. 최근에는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에스토니아를 찾아 ‘철통같은 방위’를 다짐했다.
핀란드가 80년 가까이 유지한 중립 노선을 내던지고 나토 가입을 신청한 건 ‘다시는 혼자 되지 않겠다’는 에스토니아의 국가전략에서 영감을 얻은 바 크다. 1939년 소련의 핀란드 침공으로 ‘겨울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핀란드 곁엔 아무도 없었다. 국력의 절대적 열세 속에 핀란드는 국토의 약 10분의 1을 소련에 빼앗기고 만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한 스페인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에 초대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이 되길 원하는 이유를 밝히며 “함께하면 우리는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유럽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인도태평양 지역은 중국과 주변국 간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북한은 무인기 침투 등 한국을 겨냥한 도발을 이어가며 7차 핵실험을 향해 달려간다. 국제질서를 어지럽히는 대표적 무리인 북한, 중국, 러시아와 인접한 현실은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국은 다시는 혼자가 되어선 안 된다.
‘동맹보다 민족’이란 허상(虛像)에 사로잡힌 문재인정부와 달리 윤 대통령이 대북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한·미동맹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북핵이 나날이 고도화하는 가운데 ‘북한이 쏜 핵미사일이 미 본토에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고 나서겠느냐’ 하는 의구심이 점점 확산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향후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두 나라가 ‘함께해야 더 강해지는’ 관계라는 점을 미국이 확실히 깨닫게끔 설득함으로써 국민적 불안을 잠재울 수 있길 고대한다.
김태훈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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