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일본에 단기비자 발급 중단... 입국 규제에 보복
중국이 10일 한국인에 대한 단기 방문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에서 ‘집계 불능’ 수준으로 코로나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발 입국 요건을 강화하자 이를 “차별적 조치”라며 보복에 나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중국은 이날 한국과 함께 일본에도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주한 중국 대사관은 이날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중국) 국내 지시에 따라 한국 주재 중국 영사관은 한국인의 중국 방문, 상무(商務), 여행, 의료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했다.
주한 중국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이번 조치는 중국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의 취소 상황에 따라 조정된다”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똑같은 조처를 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30일 중국 내 급격한 코로나 감염 확산을 고려해 1월 2일부터 31일까지 중국인에 대한 단기 한국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항공편 추가 증편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런 한국의 방역 정책을 ‘차별적 조치’라고 비난하며 상호주의에 따라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의 중국발 입국자를 대상으로 한 방역 강화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입각해 내린 조치”라며 “중국 측과도 계속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중국의 보복 조치에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외교 채널로 중국 측에 우리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한 바 있다”고 했다.
표면상 중국의 행동은 한국의 단기 비자 발급 중단에 따른 ‘상호주의’ 조치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2020년 3월 주변국에서 코로나 확산이 본격화하자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면서 당시 중국에 대해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한국을 포함했다. ‘문 열고 방역’을 고집하던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입국 금지 발표가 나온 후 17일이 지나서야 중국인에게 관광 등 단기 비자 발급을 통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코로나 초기 각국이 중국인 입국을 금지할 때 중국 정부는 “비과학적이며 비이성적”이라고 비난했지만, 불과 두 달 만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역 조치를 취할 때는 ‘방역 주권’을 내세우며 “필요한 조치”라고 했다. 한국에서 코로나가 확산한 후 중국 지방 도시에서 ‘강제 격리’ ‘한국인 출입 금지’ 등이 논란이 됐을 때 중국 당국은 “방역은 지방 책임”이라고 했고, 중국 관영 매체는 “외교보다 중요한 건 방역”이라고 했다. 중국식 ‘내로남불’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최소 27개 국가·지역이 중국발 입국자를 대상으로 방역을 강화한 상태다. 미국·일본·영국·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는 중국발 입국자에게 PCR(유전자 증폭) 검사 음성 결과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은 PCR 검사 외에도 추가로 단기 비자 발급 제한을 하고 있다. 중국발 국제 항공 노선 가운데 한중 노선의 수가 많고, 중국발 탑승자의 20% 가까이가 코로나 감염자로 확인되는 등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부담이 큰 상황이다. 그런데도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은 소수 국가가 중국에 차별적인 입국 제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반대하고, 대등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7일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한 이후 중국에서는 코로나가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주요 대도시의 코로나 감염률은 80~9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확한 감염 통계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 9일 인구 1억명의 허난성 방역 당국은 “허난성의 코로나 감염률은 89%”라고 밝혔다. 특히 올해 춘제(중국 설)를 기점으로 중국 소도시·농촌 지역으로 코로나가 확산하면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여행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당국이 10일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는 비자 수속 절차를 중단했다고 여행사에 통보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 등과 비슷하게 PCR 검사를 시행할 뿐 비자 발급 제한 조치는 하지 않았다. 반면 중국발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있는 모로코에 대해서 중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최근 미국과 더 가까워지는 한국과 일본에 비자 발급 중단 조치를 내려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다른 국가들의 본보기로 삼았다고 분석한다. 친강 중국 신임 외교부장이 지난 9일 박진 외교 장관과 한 첫 통화에서 한국의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강화 조치에 우려를 표시했고, 박 장관이 한국의 방역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다음 날 비자 발급 제한 조치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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