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시간 잠들면 30명이 죽는다” 유대인 1만여명 구한 ‘위조 전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에서 유대인 1만여명을 구한 프랑스의 ‘위조 전문가’ 아돌포 카민스키가 별세했다. 향년 97세.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카민스키가 이날 파리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염색·세탁 공장서 익힌 기술 활용
신분증·직인·워터마크 등 변조
어린이·부모들 점령지 탈출 도와
카민스키는 1925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프랑스에서 탈출한 러시아계 유대인이었다. 유대인 마르크스주의 신문사 기자였던 그의 부친은 프랑스 정부의 탄압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도피했다가 1930년대 초반 프랑스로 돌아왔다.
카민스키는 10대 시절 노르망디의 염색 공장과 세탁 공장에서 일했고, 이때 습득한 얼룩 제거 기술이 수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구하는 데 활용됐다.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침공 후 1941년 나치에 체포된 카민스키 가족은 ‘죽음의 수용소’로 향하는 중간 정거장이던 파리 인근 드랑시의 수용소에 보내졌으나, 소지하고 있던 아르헨티나 여권 덕분에 3개월 만에 풀려났다.
18세 때 반(反)나치 저항 운동 조직에 합류한 카민스키는 ‘줄리안 켈러’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유대인을 구출하기 위한 위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에서 ‘아브라함’ ‘이삭’ 등 유대계 이름을 지우고 새로운 이름을 입히는 방식으로 위조 작업을 벌였다. 이렇게 위조한 문서로 1만여명에 달하는 유대인 어린이와 그 부모들이 나치 점령 지역을 탈출하는 것을 도왔다.
그의 문서 위조 기술은 초등학생 때 학교 신문을 편집하며 익힌 공문서 서체 모방, 고무로 만든 관공서의 직인과 워터마크 위조 등으로 다양했다.
이런 위조 실력이 프랑스 내 비밀 유대인 지원 조직에 알려지면서 ‘3일 안에 300명의 유대인 어린이를 위해 900장의 출생 및 세례 증명서, 식량 배급 카드를 제작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카민스키는 생전 인터뷰에서 “문서 30개를 위조할 수 있는 1시간 동안 잠을 자면 30명이 죽는다”고 되뇌며 밤을 새워 작업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런 밤샘 작업으로 유대인 어린이들이 스위스 등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위조 작업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30여년간 계속됐다. 종전 직후에는 정보요원들이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나치의 점령 지역에 침투할 수 있는 공문서를 위조했다.
이 밖에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과 프랑스령 알제리,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의 저항 세력을 문서 위조 기술로 도왔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징병을 회피하려는 미국인들을 위해 서류를 조작해주기도 했다.
카민스키는 1970년대 초반 위조 작업을 그만두고 파리에서 사진가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의 생애는 2016년 그의 딸 사라 카민스키가 출간한 <아돌포 카민스키 : 위조자의 삶>과 에미상을 수상한 단편 다큐멘터리 <위조자(The Forger)>를 통해서도 소개됐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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