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광고 집행 핵심 기준 '신문 열독률' 불투명·부실
지난달 30일 공개된 신문·잡지 열독률 조사가 기존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언론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2021년 처음 시행된 열독률 조사를 두고 당시 경제지와 지역 신문사들이 조사 방식과 분석 기준을 대거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이번에도 별 개선 없이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신뢰성을 잃은 한국ABC협회의 부수 공사를 대신해 열독률 조사가 정부광고 집행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불투명하고 부실한 조사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달 30일 ‘2022 언론수용자 조사’를 발표하며 열독률 조사 결과를 함께 공개했다. 직전 해엔 따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호별 열독률과 이를 점수로 환산해 1~5구간으로 나눈 결과까지 공개했지만, 이번에는 자료들을 모두 비공개 처리하고 정부광고주에게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첫해, 공개적으로 열독률과 구간 점수를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경제지와 지역 신문사들은 신문 구독 비율이 높은 사무실이나 상점 등 영업장이 조사 대상에서 누락된 점, 대다수 지역 신문들의 열독률이 0%로 잡히고 일부 집계된 수치조차도 너무 미세해 변별력이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조사 방식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에도 조사 규모만 늘어났을 뿐 근본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직전 해와 비교하면 조사 규모는 5만1788명에서 5만8936명으로 14%가량 늘어났지만, 이번 조사 역시 언론사 간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언론재단은 “지역매체, 소규모 매체 등의 열독률을 최대한 파악하기 위해 대규모 표본을 추출, 동·읍·면부까지 표본설계를 수행”했지만 “전체 열독률 자체가 1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지역매체의 열독자 분포 역시 고르지 않은 상황에서 전수 조사가 아닌 표본 조사로 이뤄졌다”며 “자료 활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재단에 조사를 의뢰한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열독률 조사의 한계를 절감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ABC협회와 면담을 갖는 등 조사를 보완할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한편에선 조사 결과에 따라 정부광고가 집행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한 지역 일간지 간부는 “저희 신문이 첫 조사 때 1구간이 나왔다. 그런데 발행부수도, 광고효과도 다른데 1구간이라고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같은 광고비를 받을 수가 있느냐”면서 “조사 결과가 지난해 광고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정부에서도 우리가 1구간이라고 광고 더 준 것도 없다”고 말했다. 명확한 기준이 사라지다 보니 인지도가 없는 언론사에도 광고를 배분해, 전체적으론 정부광고비가 하향평준화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해 말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정부광고 집행내역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뚜렷하게 보인다. 2021년과 첫 열독률 조사 결과를 반영할 수 있는 2022년의 정부광고비를 비교해보면 언론사 간 순위 변동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1구간에 있던 언론사 두 곳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2구간에 있던 언론사들이 차지했다. 이 때문에 실효성 없는 조사에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언론재단 입찰공고에 따르면 언론수용자 조사의 배정예산은 2020년의 경우 2억5500만원이었지만 열독률 조사가 실시된 첫해, 즉 2021년엔 7억4600만원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엔 13억900만원으로 급등했다.
문제는 열독률 조사에 여러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대체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ABC협회로 회귀하자는 주장도 일부 있긴 하지만, 조작 논란으로 이미 신뢰를 상실한 데다 회원 자격만 유지한 채 실사를 받지 않는 언론사들이 늘어나고 있어 추세를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ABC협회가 매년 발표하는 ‘부수공사 참여사’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참여사는 총 1120개사였지만, 지난해엔 886개사로 1년 만에 234개사가 줄었다. 종합일간지에선 경향신문,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겨레신문, 한국일보가 공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역 일간지 한 부장은 “ABC협회의 기준과 새로운 조사 간 교차 검증을 하든가 두 조사를 합칠 수 있는 중간지대를 만들었어야 한다”며 “ABC 부수 공사에선 전혀 잡히지 않는 언론사가 열독률 조사에선 높은 수치가 나온다면 왜 이런 괴리가 발생하는지 분석하고, 그에 맞춰 기준을 만드는 시범사업을 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ABC협회를 무시하고 열독률 조사로만 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성급했다”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을 누구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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