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들의 배후는 누구일까? [뉴스+]
빌라왕들의 배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전날 윤희근 경찰청장 기자간담회에선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 빌라 오피스텔 약 240채를 갖고 있었던 ‘강서 빌라왕’의 배후로 분양컨설팅업체가 지목됐다. 경찰이 이 사건 배후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경찰은 2021년 제주에서 숨진 빌라·오피스텔 임대업자 정모씨 사건과 관련해 실제 집주인으로 추정되는 배후세력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강서 빌라왕으로 알려진 정씨는 서울 강서·양천구 일대에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 약 240채를 사들여 세를 놓다가 2021년 7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제주에서 사망했다. 정씨는 자기 자본 없이 갭투자 방식으로 임대사업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가 사망하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사례가 늘면서 사건은 확대됐다.
이에 경찰은 정씨가 아닌 대리인이 위임장을 들고 다니며 매매·임대 계약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실제 거래 주체가 누구인지 추적해왔다. 그러던 중 경찰은 한 컨설팅업체를 정씨의 배후로 판단하고 전세 사기 공범으로 입건했고 이 컨설팅업체 핵심 인물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한 경찰은 인천에서 사망한 20대 빌라왕 송모(27)씨 사건에 대해서도 배후세력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 중이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5일부터 인천 미추홀구와 부평구 일대 빌라와 오피스텔 60여채를 보유하다가 숨진 채 발견된 송씨 사건과 관련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그동안 사회초년생이고, 부채도 있는 송모씨가 무자본으로 주택 수십 채를 보유한 점을 고려할 때 실소유주가 아니라 명의만 빌려준 ‘바지사장’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세 사기 사건의 경우 건축주와 브로커가 전세가를 인위적으로 높여 차액을 나눠 갖고는 ‘바지사장’에게 건물을 떠넘기는 사례도 많았다. 즉 건축주가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주고 브로커들은 세입자들에게 건축주가 이자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유혹해 시세보다 비싼 보증금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때 바지사장들은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신용불량자나, 사회초년생들도 많았다. 수수료를 받고 인감과 주민등록등본을 넘겼다가 실소유주들이 도주하고 나면 범죄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실소유주들이 수사 선상을 빠져나가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다.
국토부가 지난해 20일 경찰청에 수사 의뢰한 전세 사기 의심거래 106건 모두 자기자본 없이 전세보증금 차액만 투자하는 ‘무자본 갭투자’ 유형이었다. 106건의 의심거래에 연루된 법인은 10개, 혐의자는 42명으로 조사됐다. 이 중에서 임대인이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공인중개사(6명), 임대인 겸 공인중개사(4명), 모집책(4명), 건축주(3명) 등이었다. 40대 임대업자 3명이 각자 자기자본 없이 전세보증금을 받아 서울 소재 빌라를 다수 매입한 후 보증금 반환이 어렵게 되자 모든 빌라를 서류 상에만 존재하는 법인에 매도한 후 잠적한 사례도 있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전세 사기의 경우 건축업자와 부동산과 바지사장이 짜고 치는 경우가 많아 세입자가 사전에 이를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목돈이 없는 사회초년생들에게 대출을 받으면 이자지원금을 준다는 식으로 유혹하는 경우가 많은데 빌라는 개별성이 강해서 다른 부동산에 시세를 문의해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워 속아 넘어가는 세입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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