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러시아 시장 공들였는데…물거품 될라 전전긍긍
10년 이상 투자·인프라 확충…미국 입김에 일본 도요타는 작년 9월 철수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러시아 판매량이 66%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해 3월부터 러시아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판매량 감소는 예정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특히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더 강력한 외교 행보를 펼칠 경우 현대차그룹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칫 러시아 시장 철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까지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일 러시아 자동차 시장 분석업체 오토스탯 자료를 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11만9708대를 판매했다. 2021년 대비 66.5% 줄어든 수치다. 기아는 6만5691대, 현대차는 5만4017대를 각각 판매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 러시아 시장은 현대차그룹이 승승장구하던 주요 무대였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러시아의 수입 브랜드 1위 업체였다.
전쟁 중이어서 판매량 자체가 큰 의미 없는 상황인 측면도 있다.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자동차가 62만6281대 판매됐다. 2021년 151만대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60% 정도 감소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2022년 한 해 가운데 2개월만 공장을 운영했다. 차량을 생산하던 지난해 1월, 2월에 현대차는 각각 1만7000여대를 판매했다. 공장 가동을 하지 못한 3월에는 3708대가 판매됐고, 4월에는 2242대로 줄었다. 7월에는 14대로 급락한 뒤 8월부터는 거의 한 대도 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업체도 상황은 비슷하다. 르노그룹도 지난해 러시아에서 4만800대를 판매해 전년보다 69% 감소했다.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해왔다.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준공했고, 2020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GM 공장을 인수했다. 투자를 늘리며 인프라를 확충했지만 전쟁으로 생산과 판매가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일본 도요타는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의 생산 종료를 결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도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휴전 등 전쟁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러시아 공장을 남겨두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공장은 가동이 중단돼 있어 큰 돈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라며 “전쟁이 끝나거나 국제 정세가 변할 수 있어 섣불리 철수를 결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방이 제재 동참을 적극 압박해올 경우 현대차그룹도 러시아 공장 포기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좀 더 깊어질 수도 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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