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K-콘텐츠 글로벌 인기 커질수록 완성도 더 높여야"[인터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주지훈이 4년 만에 영화 '젠틀맨'을 선보이며 스크린 앞에 섰다.
2018년작 '암수살인'으로 주요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던 주지훈은 이후 넷플릭스 '킹덤'(극본 김은숙 작가, 연출 김성훈 감독) 시즌1, 2를 비롯해 KBS 2TV 드라마 '하이에나'(극본 김루리 작가, 연출 장태유 감독), tvN '지리산'(극본 김은희 작가, 연출 이응복 감독)등 드라마 위주의 활약을 펼쳐 영화로의 복귀는 오랜만이다.
국내 OTT 웨이브가 선보이는 첫 오리지널 영화이기도 한 '젠틀맨'(김경원 감독)은 성공률 100% 흥신소 사장 지현수(주지훈 분)가 실종된 의뢰인을 찾기 위해 검사 행세를 하며 불법, 합법 따지지 않고 나쁜 놈들을 쫓는 범죄 오락 영화다.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젠틀맨'의 주연을 맡은 주지훈과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매번 영화 인터뷰에서 함께 한 감독, 작가와 협업 과정에서의 즐거움과 새롭게 얻은 노하우를 말하기 즐기던 그가 이번 인터뷰에서는 함께 한 선후배 배우들의 노고에 대해 꽤 큰 비중으로 이야기를 펼쳤다. 최일선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연배우로서의 깊은 고민과 폭넓어진 사고 체계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옆에 존재하는 힘없는 누군가가 거대 권력을 이겨내려고 하는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적 설정일 수 있죠.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이 스토리를 땅에 붙여서 모두가 시원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로 완성시키고 싶었어요."
의뢰받은 사건은 100% 처리하는 흥신소 사장 지현수(주지훈)는 어느날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달라는 여성 의뢰인과 함께 어느 펜션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고 쓰러진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의뢰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수는 졸지에 납치 사건 용의자로 몰려 체포된다. 현수는 연행 도중 갑작스러운 사고로 차량이 전복돼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를 검사로 오인하게 된다. 결국 현수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누명을 벗기 위해 검사로 위장하며 실종된 의뢰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시나리오를 받아서 읽었을 때부터 스토리에 반전도 많고 술술 읽히더라고요. 대본을 넘길 때마다 어떤 의심이나 의구심이 들지 않고 집중이 됐죠. 특히 오락영화에서는 그게 중요하거든요. 시나리오 안에 감독님이 예산에 걸맞는 설정들을 넣으셨다는 것이 보였어요. 50억 예산으로 500억을 벌려는 기획들도 가끔 존재하거든요. 범죄 오락물이어서 무거운 무드로 흐를 수도 있었지만 관용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어요. 김경원 감독님과 대화를 하며 흥행 승산이 충분히 있다고 봤고 저를 원한다면 응할 가치가 있다고 봤죠."
극중 빌런이자 로펌 재벌 권도훈 역은 범죄물과 코믹드라마가 적절히 공존하는 '젠틀맨'의 구조상 극의 현실감 부여를 위해 더욱 중요했다. 캐스팅 제안을 받은 박성웅이 기존 이미지와 겹칠 것을 우려해 고사했지만 주지훈이 설득에 나서면서 수락했다는 후일담도 유명하다.
"박성웅, 김남길 형과 제가 함께 하는 단체톡방이 있어요. 마침 '헌트' 카메오 출연을 함께 하게 됐기에 같이 기차를 타고 가자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어요. 성웅이 형이 '너 그 영화 하기로 했니, 나는 거절했는데'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형, 승부 걸어볼만한 책이에요'라고 말씀드렸죠. 두 시간 후에 바로 긍정의 의사를 밝히시더라고요. 박성웅 형을 제가 추천한 이유는 등장만으로도 드라마가 생기는 배우이시기 때문이에요. 칼로 찌르거나 위악을 부려서가 아니라 등장 자체로 무섭죠. 형이 악역을 맡는다면 무서울 거고 독립투사 역을 맡는다면 든든한 배우잖아요."
범죄 오락물이라는 장르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젠틀맨'은 법을 지키는데 앞장 서야할 법조인이 젊은 여성을 성적 로비의 대상으로 삼거나 대규모의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도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쉽게 빠져 나가는 모습 등을 그리며 현실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별다른 능력이 없어 보이는 흥신소 사장과 직원, 독종 검사가 힘을 합쳐 거대악에게 시원하게 복수의 한방을 날리는 스토리는 다소 판타지가 가미되어 있을지언정 관객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한방에 날려주는 통쾌한 힘이 있다.
"우리 영화는 이야기가 매우 은유적인데 갑자기 직설적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어요. 능글거리며 다가오다가 갑자기 확 다운이 되면서 정색하는 느낌이죠. 이 때 관객들이 튕겨져 나가는 걸 막아야 한다고 봤어요. 하지만 보통 뉴스에 나오는 시민 영웅들이 항상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분들은 아니지 않나요? 어느 순간 마음이 동해서 그런 영웅적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지현수 또한 주변 지인이 주식 사기를 당하면서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잖아요."
'젠틀맨'의 출연을 결심했고 영화화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 속에 주지훈만의 영화 출연 원칙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는 "보통 나쁜 영향을 받을까봐 조폭 역할을 안하는 배우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배우는 아니다. 큰 정치 성향도 없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편이다. 제 소신이 있지만 배우로서 제 소신과 반대되는 역할이 있어도 작품이 재미있다면 하는 편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 일부러 관망한다"며 "사실 이런 걱정도 있다. 제가 배우로서 이 작품에 출연하느냐 마느냐는 이야기가 합리적이고 재미있는가가 기준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작품 선택의 기준이 된다면 제 출연 작품이 획일화될 수 밖에 없다. 영화나 드라마가 사회적 이야기를 할 대도 있고 교훈적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킬링 타임용 콘텐츠도 필요하다. 사람이 매번 진지할 수는 없지 않나. 멍때리기 대회 같은 것이 왜 만들어지겠나"라며 소신을 펼쳤다.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수차례 거머쥐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주역 황동혁 감독과 이정재가 미국 에미상에서 6관왕을 휩쓸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배우 송강호가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K콘텐츠가 전 세계를 상대로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오른지 수년째다. 오늘날 K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기까지 넷플릭스서 제작된 첫 한국 드라마 '킹덤'이 미친 영향 또한 적지 않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첫 주자였던 주지훈 또한 세계로 뻗어 나가는 K드라마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듯 보였다.
"사실 '킹덤'이 제작되던 당시에는 넷플릭스가 뭔지도 잘 몰랐죠. 당시 국내 가입자가 15만 정도였을 걸요. 각자 자기 몫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킹덤'의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건 아니었어요. 프로페셔널리스트인 저희들인데 몸값도 깎았을 정도에요. 김성훈 감독님과 김은희 작가님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죠. 그런데 어느 날 빵하고 글로벌적인 사랑을 받게 됐죠.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게임들도 한국 토종 게임들이잖아요. 다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고 감독, 작가, 배우 스태프 할 것 없이 관객들과 소통하겠나는 마음으로 노력했더니 좋은 결과들이 따랐죠. 여전히 국내 관객, 시청자분들을 1순위로 생각합니다. 이번에 '피랍'으로 모로코 촬영을 갔는데 생각지도 않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들을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전 세계 분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대 허투루 만들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의 힘은 정말 크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허투루 만들어서는 안되요."
주지훈이 배우 하정우, 최민호, 여진구와 함께 호흡을 이룬 티빙 예능 프로그램 '두발로 티케팅'으로 오는 1월 중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예능 첫도전에 나서는 주지훈은 "정우 형과 저는 완전히 예능 초짜였다. 반면 최민호는 '예능의 신'이었다. 여진구는 항상 진지한 '척척박사'였다"며 소감을 전했다.
"정우 형을 보며 또 배운게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구나' 싶었어요. 정말 거장이에요. 이번 예능이 저에게 아주 새로운 경험이 됐어요. 저도 작품도 많이 출연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새롭더라고요. 후배들과도 다 친하게 지냈어요. 개인적 대화도 많이 나누고 비방용 대화도 있고 남자들끼리 하는 욕도 있었는데 어떻게 편집됐을지 궁금하네요.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비즈니스 자리도 아닌데 참 묘하고 이상했어요. 저는 둘째 형이니까 큰 형님 잘 모시고 아우들 이불 잘 덮고 자는지 이부자리 봐주고 뭐 그런 역할이었죠."(웃음)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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