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생지옥서 존엄 지키려 사투… 그들은 숭고했다
사명감 사라진 일부 공공 정신병원 등
직접 마주한 현실 생생히 그린 논픽션
본업 뒤로하고 글쓰기·공연 기획 활발
얼굴 드러내지 않지만 “이제 날 찾은 듯”
“여러 장르 합쳐 빛난 ‘유리알 유희’ 꿈꿔”
“지금 자원한 선생님 한 분이 거기를 혼자 힘겹게 틀어막고 계시는데…. 아무도 내려가려고 하지를 않네요.”
의사협회 직원이 수화기 너머로 한숨을 담아 내던진 이 한마디가 그를 “지진처럼” 흔들어 깨웠다. 누군가 홀로 지옥과 맞서 싸우고 있다고? 그는 수화기에 입을 가까이 댔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그 정신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코로나로 격리된 이들 폐쇄병동은 코로나19와 싸우는 최전선이었다.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는 정신질환자들의 코로나19를 치료하는 일은 고됐고, 무사안일과 탁상행정으로 시스템과 마인드가 무너진 공공 정신병원도 또 다른 지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떻게라도 사람들을 살리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47세의 전직 의사 출신 임야비는 왜 코로나 전쟁의 최전선을 리얼하게 담은 논픽션을 써야 했을까. 임 작가를 지난해 12월29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정신병원의 코로나19 대응은 뭐가 그렇게 어려웠나.
“정신질환자라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거나, 묶어놓으면 풀려고 한다. 코로나19에 걸린 정신질환자들은 일반 코로나19 환자와 함께 치료할 수 없다.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간 곳은 코로나19에 걸린 정신질환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이들은 원래 전신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코로나19에 걸리면 급격히 안 좋아진다. 상태가 좋지 않으면 큰 병원 중환자실로 보내야 하지만, 이미 환자가 많은 데다가 정신질환자들은 따로 치료해야 해서 중환자실 입원은 매우 힘들다. 따라서 어떻게든 중환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 소현정신병원에 있던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이를 하려고 했다.”
―두 번째 공공 정신병원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먼저, 저의 시각은 그냥 일개 봉사자의 그것이라는 걸 전제하겠다. 실제 다른 공공 정신병원들은 굉장히 잘했다고 하더라. 다만 제가 두 번째 봉사했던 공공 정신병원은 공공의료를 한다고 건물을 크게 짓고, 병상도 많이 지어놓았더라. 의료 인력도 많았는데, 다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더라. 처음 석 달 동안 현장에서 정신과 의사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여기 공무원 정신과 의사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병동 스테이션에서 간호사들에게 물으니 말해주더라. 자기네들도 잘 모른다고. 이곳 정신과 전문의들은 자신들은 정신과 전문의여서 코로나19 환자를 볼 수 없다며, 정신과 환자들에게 정신과 약만 주고 환자들이 열이 나거나 구토하거나 폐렴에 걸려 헐떡거리는 것을 보려 하지 않았다. 의대 6년과 인턴 1년, 정신과 레지던트 4년을 모두 마친 전문의인데도,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많은 분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온몸을 던져가면서 코로나19를 막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미리암 수녀님, 안동권 선생님, 정철훈 원무과장, 김지현 수간호사…. 물론 반대인 사람도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셀 것 같아서 안 쓴 부분도 많다. 별의별 이기심의 끝을 본 적도 있고, 무사안일 탁상행정의 끝을 본 적도 있다. 독자들도 한번 같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코로나19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다음번에는 조금 더 효율적이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방법이 무엇인지를.”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난 임야비는 2019년 진료를 접고 자신의 꿈을 찾아서 걸어갔다. 이듬해인 2020년 첫 장편 공상과학(SF) 소설 ‘클락헨’을 펴냈다. 그는 소설이나 논픽션을 쓸 뿐만 아니라, 클래식 공연도 기획하고, 여러 극단에서 연출부 드라마투르그로도 일한다. 드라마투르그로서 지난해에만 연극을 5개나 올렸다.
―소설가와 작가, 공연 기획, 연극 연출의 길 가운데 미래는 어디로 갈까.
“의사였던 옛날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야 나를 찾은 것 같다(웃음). 앞으로도 작가와 연극을 병행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소설 쪽으로 조금 더 많이 갈 것 같다.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유리알 유희’다. 쉽게 얘기하면, 여러 영역을 조합해 광채가 나게 하는 유리알 유희를 만들고 싶다.”
그는 많은 작가와 달리 자신의 이름이나 개인정보, 얼굴이 공개되는 걸 꺼렸다. 그래서 책이나 인터뷰에선 필명을 사용했고, 사진 역시 뒷모습과 옆모습만 촬영토록 허락했다. 다양한 분야와 장르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나아가 의사라는 사실이 부각되면 본의 아니게 사라지게 될 문학과 예술에 대한 존중을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란 직업을 내던지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임야비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한, 우리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찬찬히 보면, 많은 사람 역시 팍팍한 현실과 다른 새 삶의 꿈을 꾸거나 준비 중이다. 현실과 다른 꿈을 꾸는, 그 마음을 따라가는 모든 이 역시 임야비인지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리고 나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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