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선택이 내 삶 만들어…가고 싶은 길 가야 후회 없다”

이강은 2023. 1. 1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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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프 덴’으로 돌아온 정선아
“결혼·출산, 배우로서 엄청난 경험
성숙한 마음가짐·연기에 큰 도움
무대 후 ‘변함없다’ 말에 위안 얻어
오래 행복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꿈”
커리어 쌓는 ‘베스’·가정 택한 ‘리즈’
선택에 따라 다른 두 인생 보여주는
한국 초연 ‘이프 덴’ 2월 26일까지
중학교 2학년 때 뮤지컬에 푹 빠진 소녀가 있었다. 학업보다 뮤지컬에 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할 만큼 미친 듯이 좋아했다. 소녀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노래, 연기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고등학생이던 19살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결국 뮤지컬 ‘렌트’의 여주인공 미미 역을 꿰차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뮤지컬 ‘위키드’의 마녀 글린다와 ‘아이다’의 공주 암네리스 등 폭발적인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력을 앞세워 대형 작품들의 주연을 맡으며 ‘뮤지컬 디바’로 정상에 우뚝 섰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기로 할 만큼 뮤지컬 배우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그는 비혼주의를 접어야 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하지만 그답게 경력 단절의 두려움을 딛고 아내와 엄마가 되는 길을 택한다. 그렇게 1년 반가량 배우로서 활동하지 못했지만 최근 복귀작 ‘이프 덴(If Then)’을 보면 공백기가 무색하다. 주 무기인 노래 실력은 여전하고 연기의 깊이는 더해졌다. 뮤지컬 배우 정선아(39) 얘기다.
뮤지컬 ‘이프 덴’에 출연 중인 배우 정선아. 팜트리아일랜드 제공
“뮤지컬 배우로서 누린 게 무너질까 봐, 육아에 힘들어하던 친구들 보면서 결혼하지 말고 혼자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결혼하고 애도 낳았네요. 1년 반 동안 하고 싶은 작품도 못 하고 포기해야 할 것도 있었지만 또 다른 기쁨을 얻었고, 배우 인생에도 이런 경험이 엄청 좋은 것 같습니다. 마음가짐이나 연기적으로 성숙함이 더해진 것 같아요.”

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선아는 경력 단절을 걱정해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는 여자 후배들이 있다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떤 선택이든 가고 싶은 길로 가는 게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복귀 무대로 낙점한 ‘이프 덴’도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이혼 후 10년 만에 뉴욕에 돌아온 엘리자베스가 선택에 따라 각각 ‘리즈’와 ‘베스’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모습을 그린다. 결혼에 육아까지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리즈’와 뉴욕 도시계획부서에서 일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베스’의 삶이 교차된다. 이번이 한국 초연이다.

“이 작품은 놓칠 수 없었어요. 정선아 인생에 딱 맞는 작품이었죠. 첫 공연이 끝나자마자 펑펑 울었어요. 오랜만의 복귀라 사실 두려움이 있었는데, 관객들이 생각보다 더 뜨겁게 반응해 줬어요. 20년간 꾸준히 뮤지컬 한길을 걸어온 데 대해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정선아는 공백기가 짧지도 길지도 않았지만 그동안 관객들이 자신을 잊어버릴까 봐, 노래가 예전처럼 안 나올까 봐 걱정됐다고 한다. 이에 출산 후 다이어트와 체력 관리, 노래 연습에 힘썼고 ‘이프 덴’을 통해 ‘정선아 변함없다’는 평가를 듣자 위안이 됐단다.
정선아가 임신과 출산 후 복귀작으로 택한 뮤지컬 ‘이프 덴’에서 순간의 선택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리즈’(왼쪽)와 ‘베스’를 연기하는 모습. 쇼노트 제공
‘이프 덴’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예전부터 연기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연극이나 소극장 무대로 관객을 가까이 만나고 싶은 마음이 늘 한편에 있었죠. 하지만 화려하고 큰 작품들이 많이 들어온 데다 관객들이 내게 원하는 건 대극장에서 노래 잘하는 것이라 생각해 선뜻 시도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용기가 생겼어요. 이젠 안 가본 길을 개척해보고 싶었고 운명처럼 이 작품을 만났죠.”

빠른 극 전개와 엄청난 대사량에 연습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고 주인공과 나이도 비슷해 보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혼이나 출산 전에 이 작품을 만났다면 이렇게 세심하게 하진 못했을 것 같아요. 정선아 개인에 대한 칭찬보다 작품에 공감하며 위로받았다는 관객들 반응에 더 감사해요.”

멋모르던 어린 시절엔 자신감이 넘쳐 ‘박수 칠 때 떠나겠다’고 다짐했다던 그는 “지금은 누구보다 오래 행복하게 무대에 오르는 배우, 관객과 동료에게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 경험이 가치관 등 본인 인생에 큰 변화를 줬다면서. “그 전에는 나만 생각하고 자만심도 컸는데, 내가 여기까지 온 건 나를 사랑해준 분들 덕분이란 감사함이 들었고, 그 사랑을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임신 중에 목소리로 재능기부를 하고, 데뷔 20주년이던 지난해 수익금을 기부하는 콘서트를 연 것도 같은 이유다.

정선아는 “극 중 노래 ‘결국 다시 시작(ALWAYS STARTING OVER)’처럼 1분 1초 무수한 나의 선택이 내 인생을 만드는 것 같다”며 “(작품 메시지처럼) 선택에 따라 실망과 좌절의 순간도 있겠지만 굴복하지 않고 묵묵히 선택한 길을 가겠다”고 했다. 공연은 다음달 2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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