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불평등 축소의 묘수는 어디에?
조형근 | 사회학자
1936년 12월28일,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의 지엠(GM)자동차 피셔보디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사쪽에 산별노동조합인 전미자동차노조와의 협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공장 점거라는 혁신적 방식의 파업이었다. 늘 기업 편인 법원은 두차례나 점거중지 명령을 내렸다. 구사대와 경찰이 최루탄과 산탄총으로 공격했다. 군까지 동원됐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가너 부통령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진압을 촉구했다. 주방위군 지휘권을 쥔 민주당 소속 머피 주지사는 고뇌를 거듭했다. 군은 끝내 발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경단과 경찰의 노동자 공격을 막는 평화유지군 노릇을 했다. 루스벨트와의 공감 속에 이뤄진 결단이었다. 파업 44일째인 1937년 2월11일, 마침내 사쪽이 전미자동차노조와의 협상에 동의했다. 노동자가 승리했다. 파업이 전국으로 번져갔다. 산별노조와의 협상을 완강히 거부하던 기업들이 하나둘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이 변했다.
뉴딜은 곧잘 대공황 극복을 위해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고 공공사업을 벌인 정책으로 이해되곤 한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뉴딜은 불황을 극복하려는 경제정책일 뿐 아니라 불평등을 축소하려는 사회정책이기도 했다. 1920년대 호황기에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확대됐다. 부자들이 태산 같은 부를 쌓을 때 노동자에겐 노조 설립의 자유조차 없었다. 루스벨트는 노동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불평등을 줄일 수 없고,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면 대공황도 극복할 수 없다고 믿었다. 1933년 전국산업부흥법으로 노조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고, 1935년 전국노동관계법(와그너법)으로 산별노조 설립의 자유를 보장했다. 부당노동행위들도 금지했다. 실업보험과 노령·장애인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도 도입했다. 플린트 파업은 이러한 위로부터의 개혁에 대응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었다. 불평등 축소의 정치, 뉴딜 동맹의 시작이었다.
불평등이 화두인 시대다.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995년 한국에서는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31.8%를 차지했다. 2021년에는 46.5%로 늘었다. 소득 상위 1%의 몫은 7.2%에서 14.7%로 두배 이상 늘었다. 그만큼 중하층 몫이 줄었다. 어떻게 불평등을 축소할 수 있을까? 뉴딜에서 보듯 결국 정치의 힘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어떨까?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생각해본다. 주인공 기훈은 자동차회사 ‘드래곤 모터스’에서 해고된 노동자다. 경찰특공대원들의 곤봉과 군홧발에 죽은 동료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를 모델로 삼았다. 당시 쌍용차 쪽은 5300명 노동자 중 절반인 2646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명박 정권의 파업 대응은 사실상 전쟁이었다. 헬기 여섯대가 30m 상공을 날며 최루액을 뿌렸고, 프로펠러 하강풍으로 노동자들을 위협했다. 대형 기중기 3대에 컨테이너를 매달아 장애물을 파괴했다. 노동자 94명을 구속했고, 230명을 불구속기소했다. 그것도 모자라 진압하던 헬기와 기중기가 손상됐다며 노조와 일부 노조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자가 불어나 배상액이 30억원까지 늘었다. 마침내 지난해 11월30일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헬기의 최루액 살포와 하강풍 이용, 기중기 사용 등이 “생명·신체에 위해를 주는 행위”인 한 노동자들의 대응은 정당방위였다고. 고마울 따름이다.
30명 넘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보수정권의 만행 탓이다. 문재인 정권은 무엇을 했을까? 보수정권의 손배 소송을 이어갔다. 또 있다. 2013년, 박근혜 정권의 고용노동부는 해고자 아홉명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 처분했다. 노동에 대한 전면 공격이었다. 2020년 9월3일 대법원은 이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당시 전교조 위원장의 말이다. “청와대와 고용노동부가 조금이라도 의지가 있었다면 팩스 한장으로 직권취소가 가능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문재인 정부의 노동부는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적법했다고 주장했다. 조국·추미애 법무부 장관 그 누구도, 단 한차례도 노동기본권을 인정해야 하며 노조 파괴자를 처벌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처럼 진행 중인 사안도 있다. 왜 이렇게 싸울까? 직접적으로는 지난해 1월 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 때문이다. 법안은 저상버스 등 장애인을 위한 특별이동수단 도입을 의무화했다. 좋은 일이다. 운영비 지원은 의무가 아니라 임의에 맡겼다. 기막힌 일이다. 장애인들이 모욕받으며 싸우게 된 이유다.
한국판 뉴딜을 실행하겠다던 지난 정권이었다. 약자의 힘을 키워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비전은 없었다. 물론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중도보수, 자유주의에 가깝다. 보수정당보다 낫다고는 해도 불평등 축소에 적극적이긴 어렵다. 미국 민주당의 변신도 대공황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큰 위기도 아닌 때에 자유주의 정당이 불평등 축소에 힘 쏟는 게 가능할까? 영국 자유당이 결행한 ‘인민예산’ 사례가 인상적이다. 로이드조지 주도로 재집권한 자유당이 1909년에 내세운 예산안은 폭탄 같은 충격이었다. 누진적 종합소득세 도입, 상속세 인상, 대규모 영지에 대한 토지세 인상으로 노동자 퇴직연금 등 새로운 사회정책의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분노한 보수당은 상원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자유당은 상원의 거부권을 영구 박탈하는 법안으로 맞섰다. 보수당은 분열하며 거부권 행사에 실패했다. 이렇게 영국 정치에서 귀족의 지배가 끝났다.
어쩌다가 자유당이 과감하게 불평등 축소에 나섰을까?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거 국면에서 자유당이 노동당에 점차 대체되는 걸 두려워하던 때에, 자유당으로서는 인민 대중에게 보증할 만한 무언가를 내놓아야만 했”다고. 영국 노동당은 창당 첫해인 1900년에 2석을 얻었다. 1906년엔 29석이 됐다. 노동당의 성장이 자유당을 담대한 개혁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진보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진부한 결론이다. 묘수는 없다. 자유주의 정당이 불평등 축소에 나선다면 기쁜 일이다. 그럴 리 없다며 미리 냉소하지 말자. 진보가 자강하지 않는데 자유주의 정당이 나설 이유는 딱히 없다. 결국 진보의 자기 책임이다. 느려도 이쪽이 지름길이다. 한표 나눠주면 좋겠다는 소망 따위는 잊자. 연민은 아름다운 개인 윤리일 수 있지만 바람직한 정치 윤리는 아니다. 연대는 평등한 관계에서 자란다. 연민 말고 연대다. 선거가 없는 해라서 더욱 다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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