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출석하는 날 살풍경…“조작 검찰” “대장동 수괴”
“우리들의 대통령 이재명”이란 연호와 함께 “표적수사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서울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 3, 4번 출구 쪽에서 울려 퍼졌다. 이에 질세라 건너편의 1, 2번 출구 쪽에선 “대장동 수괴 이재명을 체포하라”는 정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 에프시(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수원지검 성남지청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지지자와 반대자 수백여명이 집결해 왕복 1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극명한 대치 전선을 형성했다.
이 대표는 오전 10시20분께 성남지청 정문 쪽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뒤 그를 에워싼 수백명의 지지 인파를 가르며 청사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 때 썼던 선거송까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면서 유세 현장을 방불케 했다.
민주당 의원 41명을 포함한 당 인사 50여명도 이 대표의 곁을 지켰다. 박홍근 원내대표와 정청래·고민정·박찬대·서영교·장경태 최고위원 등 지도부, 우원식·김남국·문진석 등 가까운 의원들뿐만 아니라 김태년·김영배 의원 등 비이재명계도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 중심의 ‘단일대오’를 보여준 장면이란 평가가 나왔다.
짙은 남색 넥타이를 맨 이 대표는 포토라인에 선 뒤 상의 안주머니에서 입장문을 꺼내 10여분 간 담담히 읽어내렸다. 이 대표는 말머리에서부터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헌정사 초유의 현장에 서 있다. 오늘 이 자리는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오늘이) 무리한 정권의 역주행을 이겨내고, 역사는 전진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증명한 역사의 변곡점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권력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란 것을, 정치가 시민을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행정으로 증명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불가침의 성벽을 쌓고 달콤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에게 아마도 이재명은 언제나 반란이자 불손 그 자체였을 것”이라며 감정적 호소도 이어갔다. 또 “저는 기득권과 싸워오면서 스스로를 언제나 어항 속 금붕어라 여겼고, 성남시 공직자들에게 ‘숨기려 하지 말고, 숨길 일을 하지 마라’고 말해왔다”며 결백을 강조했다. 그는 “검찰 공화국의 이 횡포를 이겨내고 얼어붙은 정치의 겨울을 뚫어내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입장문 발표 뒤 ‘검찰의 수사 의도’에 관한 기자 질문에 “검찰은 이미 답을 정해놨다. ‘답정기소’다. 검찰에게 진실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의미 없고, 결국 법정에서 가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답한 뒤 동행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한 뒤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문 발표에 앞서 현장에 있던 일부 보수 유튜버가 ‘형수 욕설 사건’을 거론하며 원색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이 대표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손가락으로 ‘쉿’하는 동작을 했다.
이날 이 대표가 도착하기 전부터 성남지청 정문 앞 인도를 중심으로 그를 지지하는 파란 물결이 형성됐다. 민주시민촛불연대, 이재명 지지연대, 잼잼봉사단 등의 단체들이 주축이 됐다. 지지자들은 한 손에 민주당의 상직색인 파란색 풍선을 쥐고, 또 다른 손엔 “우리가 이재명이다, 조작검찰 표적수사 중단하라” “이재명이 민주당이고, 민주당이 이재명이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검찰 비판 구호와 “이재명 절대 지켜” 등의 응원 구호를 번갈아가며 외쳤다. 일부 지지자들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사건을 거론하며 “김건희를 구속하라”고 소리치거나,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사건을 언급하며 “윤석열 장모 최은순을 구속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곧바로 닿을 수 있는 건너편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대장동 수괴 이재명을 체포하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는 가운데 “이재명 구속”이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인도 위 철제 울타리에 줄지어 걸렸다. 애국순찰팀 등의 보수단체들이 내건 것이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 대표가 구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지지자는 “방탄복 판매. 죄짓고 불안하신 분 방탄조끼 입으세요. 의원님들이 지켜주십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번쩍 들어 올리기도 했다. 민주당이 이 대표 방탄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이날 오전 7시부터 12개 중대, 900여명을 순차적으로 배치해 양쪽의 충돌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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