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보국' 이끈 제약 1세대 8人, 반세기 동행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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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국내 주요 제약사 오너 경영인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팔진회는 국내 1세대 제약기업 오너들의 친목 모임이다.
윤영환 회장은 대웅제약에서 1974년과 1988년 각각 '우루사' 연질 캡슐과 국민 소화제 '베아제'를 선보였다.
허억 회장은 1975년 8월 초 삼아제약에 전 사원 동시 휴가제를 도입해 제약업계 휴가 문화를 정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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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약 초석 닦은 제약 1세대 오너
제약협회장도 맡아 산업 이끌어
2세 모임 '약미회'로 동행 이어져
1975년 국내 주요 제약사 오너 경영인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좋은 약을 만들어 국민 건강을 지키자는 ‘의약보국’ 정신을 되새기고 친목을 다지기 위한 모임이었다. 이름은 팔진회(八進會). 여덟 사람이 함께 나아가자는 뜻을 담았다.
모임을 주도한 맏형은 당시 48세였던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이다. 가장 ‘젊은 피’였던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의 당시 나이는 37세. 김승호 보령 회장, 이종호 JW중외제약 명예회장, 유영식 옛 동신제약 회장, 고(故) 윤영환 대웅제약 회장, 고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 고 허억 삼아제약 회장 등이 함께 의기투합했다.
48년이 지났다. 맏형은 어느덧 95세가 됐다. 여덟 명의 구성원 중 세 명은 세상을 떠났다. 팔진회는 반세기 가까이 이어온 동행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그동안 모은 친목 기금은 후배 제약인들을 위해 지난 9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기부(금일봉)했다.
팔진회는 국내 1세대 제약기업 오너들의 친목 모임이다. ‘쉰 살이 되기 전에 의미있는 모임을 갖자’던 강 회장의 뜻에 따라 업계 후배들이 모였고 매달 만나면서 친목을 다졌다.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랜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동종 업계 오너들이 친목을 다지는 모임도 흔치 않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연구개발 등이 필요한 데다 대표 규제산업인 제약 업종의 특수성이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팔진회가 시작된 1975년은 석유파동으로 경제 성장 둔화, 고물가, 국제수지 악화 등 3중고가 이어지던 때다. 하지만 국내 제약산업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1971~1975년 국내 제약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34.7%에 이른다. 주요 제약사가 제품 개발 경쟁을 통해 다양한 신약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강신호 회장이 동아제약 대표로 취임하면서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도 1975년부터다. 김승호 회장이 1975년 선보인 보령 ‘겔포스’는 액체 위장약 시장을 열면서 블록버스터 반열에 올랐다. 어준선 회장은 1981년 먹는 시력 감퇴 개선제 ‘토비콤’ 출시를 이끌었다. 윤영환 회장은 대웅제약에서 1974년과 1988년 각각 ‘우루사’ 연질 캡슐과 국민 소화제 ‘베아제’를 선보였다.
이종호 명예회장은 연구개발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 1983년 JW중외제약 중앙연구소를 세웠다. 허억 회장은 1975년 8월 초 삼아제약에 전 사원 동시 휴가제를 도입해 제약업계 휴가 문화를 정착시켰다.
1990년대 중반엔 이들의 뒤를 이어 제약업계 2세 모임인 ‘약미회’가 태어났다. 유승필 유유제약 전 회장, 조의환 삼진제약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정도언 일양약품 회장, 김영진 한독약품 회장, 백승호 대원제약 회장 등이 주축 멤버다.
강신호·김승호·이종호 회장은 한국제약협회장을 지내면서 보건의약계 자문 역할을 했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던 이들도 세월의 풍파는 비켜가지 못했다. 회원들은 80~90대가 됐고 건강 등의 문제로 더 이상 활동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해 모임 중단을 결정했다.
마지막 모임은 지난 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있었다. 김승호 회장과 윤원영 회장, 이종호 명예회장이 참석했다. 원희목 제약바이오협회장도 함께했다. 마지막 간사를 맡은 김승호 회장은 남은 회비를 기부하며 “좋은 곳에 써달라”고 했다. 원 회장은 “팔진회의 발자취와 산업에 대한 애정은 제약업계 후배들에게 큰 울림과 자극이 됐다”며 “대선배들의 뜻을 이어받아 산업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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