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기다리는 마음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김민부 작사·장일남 작곡의 우리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다.
황해도 해주 출생의 장일남 선생은 6·25전쟁 때 피란민이었다. 고향을 그리던 선생은 김민부 시인에게 제주도 망부석 설화를 바탕으로 가사를 쓰게 하여 아름다운 가곡으로 탄생시켰다. 김민부 시인은 부산고등학교 1학년 재학 시 동아일보에, 3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의 천재 시인이다. 부산 MBC 방송작가로 '자갈치 아지매'란 인기 장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TBS, DBS 등에서 방송작가로 활약했다.
1972년 이 천재 시인은 불의의 화재 사고로 31세의 나이에 요절하는 불운을 겪는다. 또한 안타까운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 시집도 불타버렸다.
지난해 가을, (사)한국시인협회 세미나는 유자효 회장님의 기획으로 부산에서 열리게 되었다. 문학수첩의 발행인 고 김종철 시인의 시비와 부산 서구 영도 암남동에 자리 잡은 김민부 시인의 시비를 찾아 두 시인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오래전 88올림픽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창작오페라 '불타는 탑'을 준비하시던 작곡가 장일남 선생과의 특별한 일화가 있다. 극작가 윤조병 선생님이 대본을 쓰신 '불타는 탑'은 지귀와 선덕여왕(만덕공주)의 비련을 그린 내용이다. 그 이전에 '원효대사'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셨는데, 그 대본을 바로 김민부 시인이 썼던 것이다. 외국의 유명 오페라들은 시인과 작곡가가 함께 작업을 한 경우가 많다고 하시면서 김민부 시인과의 협업이 이상적이었고 작곡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고 회상하셨다. 그리고 아리아 등 가사를 써주기를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평소 나의 졸시를 칭찬해주시던 분이라 감사한 마음은 컸지만 김민부 시인을 대신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당시 필자는 윤학원 선생님이 지휘하시는 '한국 마드리갈합창단'의 단원이라 "음악에 조예가 있고 또 국가 행사에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라 가사 몇 편만 도와달라"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리고 대본 복사본과 함께 주시던 시집 한 권이 바로 김민부 시인의 서명으로 장일남 선생께 올린 '나부와 새'이다. 가곡 '기다리던 마음'의 작사가로만 알았던 김민부 시인의 시는 빛나는 감각의 시어들로 그의 천재를 노래하고 있었다.
필자는 합창곡-석공들의 노래(돌과 함께 살리라), 아리아를 위한 몇 편의 가사를 드렸다. 원고료와 작사가 이름을 팸플릿에 넣으신다고 하셨는데 극구 사양했다. 처음 내건 나의 조건이 이 시집을 받는 조건이었고 다른 어떤 보상도 이 시집 이상의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김민부 시인을 조금이나마 흉내 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인생에서 크나큰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연을 안고 김민부 시인의 시비 앞에서 '귀한 시집을 보관해주어 고맙다'는 유족과 후원회장의 인사도 받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필자가 소장한 시집 '나부와 새'가 이 세상에 유일하게 한 권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김민부문학관'이 건립된다면 기증하리라 다짐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향유해야 될 귀한 책이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이 시집을 소장하신 분은 꼭 연락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성옥 갤러리서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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