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서구는 중동을 못 이해한다는 진영논리

2023. 1. 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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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폭력과 분쟁 원인을
식민지배 탓으로 돌리는 건
에드워드 사이드의 유산
나름 독창성과 설명력 불구
이념적 도그마의 위험

중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양분된다. 끊이지 않는 폭력과 분쟁의 원인을 두고 이슬람 문화와 식민 지배의 유산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학계에서는 후자의 목소리가 꽤 크다. 많은 나라가 제국주의 영향 아래 근대국가의 토대를 다진 후 비대해진 국가와 한없이 위축된 시민사회의 부작용을 겪었기에 공감이 가는 얘기다. 독립 이후 신생 엘리트가 발전을 핑계로 식민 지배 시기의 강권기구를 복원해 독재정치를 펼쳤더라도 원죄는 제국주의에 있다고 보기도 한다.

우리의 사정도 비슷하다. 평화의 종교인 이슬람을 오해한다는 호통, 중동의 혼란은 영불제국주의에 이은 미국 패권주의와 유대 자본의 음모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이런 시각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오리엔탈리즘'에 크게 의존한다. 컬럼비아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사이드는 오리엔트 즉 중동과 이슬람 세계의 문제는 전적으로 제국주의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나아가 서구는 제국주의의 파괴적 음모를 은폐하기 위해 오리엔트를 의도적으로 비하하며 오리엔탈리즘이란 학문을 체계화했다고 강조한다. 사이드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일이 가진 자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정치적 결정이듯이 서구의 중동 연구도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복무한 학문에 불과하다. 불평등한 권력 구조하에서 순수 지식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권위를 얻은 지식을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조언한다. 덧붙여 사이드는 오리엔트 사람이 아니면 오리엔트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 아랍 기독교도로 미국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교 문학에 밝은 만큼 고대 그리스 작품부터 18~19세기 영국·프랑스·독일 문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활용하고 따져 제국주의 식민 지배의 음흉한 의도를 파헤쳤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음악과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도 한통속이다. 서구가 규정하는 오리엔트의 이미지는 남성 독점, 잔혹함, 기이함, 욕망, 하렘, 노예 등이다. '오리엔탈리즘' 초판 표지인 장 레옹 제롬의 그림에도 눈이 풀린 병사의 무리 앞에서 뱀을 조련하는 알몸의 미소년이 서 있다.

왜 서구는 오리엔트에 허구 이미지를 씌워 왜곡했을까? 책에서 서구는 근대성을 강화하기 위해 야만의 세계 오리엔트라는 타자가 필요했다. 유럽이 중세 암흑기에 갇혔을 때 오리엔트는 학문, 예술, 군사적으로 강력한 경쟁자였기에 두려운 상대이기도 했다. 왜 일반 독자는 소위 전문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릴까? 사이드에 따르면 일반인은 권위에 약하다. 이들은 낯선 대상 앞에서 방향을 잃는 것보다 지적 권위를 인정받은 텍스트에 안심하며 우리와 다른 '그들'을 지정하는 보편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중동에서 나고 자라지 못한 사람은 그 지역을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이드의 선언은 불편하다. 지적 담론이란 기득권자의 부패한 정치 교리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을 순수하게 해석하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니, 답답하다. 과학적 지식의 가치는 독립성의 확보에 있는데 단지 서구에서 생산된 자료라는 이유로 객관성 없이 왜곡됐다는 주장은 너무 나갔다. 사이드의 논리라면 미국과 유럽 학계의 중동 분석은 정치적 산물에 불과하지만, 학문의 독립과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중동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나온 지식이 더 순수하다. 과연 중동 시장에 소중한 자산 투자를 결정할 때 뉴욕타임스나 가디언보다 현지 언론 정보에 더 기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힘의 배분 구조를 중동 분석의 핵심에 두었다는 점에서 문화의 우열을 따지는 이론보다 더 과학적이다. 그런데 제국주의의 폐해를 폭로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팩트보다는 이념 선전의 덫에 갇혀 움쭉달싹 못하고 있다. 감성과 당위에 치우친 구호로는 베리타스를 찾을 수 없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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