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경찰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숨는다
신광영기자 2023. 1. 10. 17:17
2017년 4월 5일 밤 미국 뉴저지의 단독주택 현관에 80대 중국인 남성이 구부정하게 섰다. 이 노인은 이틀 전 중국 공작원에 이끌려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중국 공안은 뇌물수수 혐의를 받다가 미국 뉴저지로 숨어든 그의 아들을 쫓고 있었다. “아들을 만나서 계속 귀국을 안 하면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지 전하라.” 노인은 아들을 유인하기 위한 ‘인간 미끼’였다.
공안은 아들의 거처를 몰라 인근 친척 집에 노인을 내려줬다. 현관문을 연 친척들은 중국에서 투병 중인 삼촌이 불쑥 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연락을 받고 온 아들은 아버지를 차에 태워 30분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요원의 차량이 조용히 뒤따랐다. 집 앞에는 아들의 신고로 미국 연방수사국(FBI) 차량이 와있었다.
‘목표물’과 대면접촉에 실패한 공작원들은 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다음 ‘미끼’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딸이었다. 요원들은 스탠포드대를 졸업하고 결혼해 살던 딸의 집과 직장에 찾아가 아버지를 비난하는 동영상을 촬영하라고 강요했다. 집요한 스토킹에 시달리던 딸은 시키는 대로 영상을 찍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유해야 했다. 전방위 압박에도 목표물이 귀국을 거부하자 요원들은 그의 뉴저지 집에 찾아가 메모를 붙였다.
‘중국으로 돌아와 10년 징역을 살면 가족들은 무사할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비밀경찰 행각은 미 법무부가 2020년 10월 중국 측 요원 6명을 기소하며 법원에 낸 공소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은 해외 도주 범죄자들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여우 사냥(Fox Hunt)‘이라 불리는 초국가적 법집행을 해왔다. 중국 본토와 해외 정보망이 총동원되는데 세계 각지에 포진한 비밀경찰서가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고 미 정보당국과 국제인권단체들은 보고 있다.
‘여우 사냥’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4년 부패척결을 선포하며 본격화됐다. 미국 등 대부분의 서방국가들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지 않은 중국은 해외에서 중국인을 합법적으로 잡아올 방법이 별로 없다. 송환 대상 중에는 뇌물·횡령 뿐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거나 인권운동을 해온 인사가 많아 외교 마찰 소지도 크다. 중국 비밀경찰은 회유 협박 납치 등 탈법적 수단으로 반체제 인사를 ‘사냥’하는 게 주 임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중국의 유명 풍자만화가와 민주화 운동가가 2015년 탄압을 피해 태국으로 탈출해 유엔 난민으로 인정받았음에도 현지의 중국 비밀경찰에 체포돼 송환됐다.
지난달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중국이 53개국에 비밀경찰서 102곳을 두고 있고, 한국에도 1곳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장소로 의심받는 서울 한강변의 중식당 대표는 “한국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중국인 10명의 귀국을 지원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들 기관의 대외 명칭은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 110은 한국의 112와 같은 중국 공안 신고번호다. 2019년 5월 중국의 관영언론은 저장성 경찰이 스페인 마드리드의 ‘서비스 스테이션’을 통해 6건의 범죄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용의자 2명이 자수하도록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마드리드 요원들은 중국인 수배자를 데려와 앉힌 뒤 저장성에 있는 공안요원과 영상통화를 하게 했는데 영상 속 요원 옆에 그의 가족이 있었다.
중국의 해외공작 거점은 식당이나 편의점, 복덕방 등 일상적인 외양을 한 경우가 많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수원왕갈비통닭처럼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공안이 현지로 출국할 때도 경찰 신분을 밝히고 관광비자로 들어간다. 잘 보이는 곳에 숨는 게 전략이다.
전 FBI 중국 분석관 폴 무어는 중국의 공작 스타일을 ‘1000개의 모래알’이란 표현으로 설명했다. “어떤 해변의 모래가 공작 대상이라면 다른 국가들은 특수요원을 잠수함에 태워 보내 은밀히 모래를 담아오거나 인공위성 적외선 탐지장치 등을 이용해 모래 성분을 분석하려 할 것이다. 중국은 다르다. 1000명의 중국 시민들을 그 해변으로 하루 소풍을 다녀오게 한 뒤 옷을 털게 해 1000개의 모래알을 수집할 것이다.”
일종의 ‘인해전술’로 많은 사람에게 제한된 임무를 부여해 전체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중국 비밀경찰의 정체를 밝히려면 해외 각지에 정교하고 촘촘히 연결된 네트워크를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외로 간 범죄자는 하늘에 떠있는 연과 같다.”
상하이 공안의 한 간부는 중국 관영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목표물이 세계 어디에 있든 중국에 남은 가족을 볼모로 잡고 있어 연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듯 중국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은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약 23만 명이 형사처벌 절차를 밟기 위해 자발적으로 귀국했다고 밝혔다.
공안은 아들의 거처를 몰라 인근 친척 집에 노인을 내려줬다. 현관문을 연 친척들은 중국에서 투병 중인 삼촌이 불쑥 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연락을 받고 온 아들은 아버지를 차에 태워 30분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요원의 차량이 조용히 뒤따랐다. 집 앞에는 아들의 신고로 미국 연방수사국(FBI) 차량이 와있었다.
‘목표물’과 대면접촉에 실패한 공작원들은 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다음 ‘미끼’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딸이었다. 요원들은 스탠포드대를 졸업하고 결혼해 살던 딸의 집과 직장에 찾아가 아버지를 비난하는 동영상을 촬영하라고 강요했다. 집요한 스토킹에 시달리던 딸은 시키는 대로 영상을 찍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유해야 했다. 전방위 압박에도 목표물이 귀국을 거부하자 요원들은 그의 뉴저지 집에 찾아가 메모를 붙였다.
‘중국으로 돌아와 10년 징역을 살면 가족들은 무사할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비밀경찰 행각은 미 법무부가 2020년 10월 중국 측 요원 6명을 기소하며 법원에 낸 공소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은 해외 도주 범죄자들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여우 사냥(Fox Hunt)‘이라 불리는 초국가적 법집행을 해왔다. 중국 본토와 해외 정보망이 총동원되는데 세계 각지에 포진한 비밀경찰서가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고 미 정보당국과 국제인권단체들은 보고 있다.
‘여우 사냥’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4년 부패척결을 선포하며 본격화됐다. 미국 등 대부분의 서방국가들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지 않은 중국은 해외에서 중국인을 합법적으로 잡아올 방법이 별로 없다. 송환 대상 중에는 뇌물·횡령 뿐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거나 인권운동을 해온 인사가 많아 외교 마찰 소지도 크다. 중국 비밀경찰은 회유 협박 납치 등 탈법적 수단으로 반체제 인사를 ‘사냥’하는 게 주 임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중국의 유명 풍자만화가와 민주화 운동가가 2015년 탄압을 피해 태국으로 탈출해 유엔 난민으로 인정받았음에도 현지의 중국 비밀경찰에 체포돼 송환됐다.
지난달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중국이 53개국에 비밀경찰서 102곳을 두고 있고, 한국에도 1곳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장소로 의심받는 서울 한강변의 중식당 대표는 “한국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중국인 10명의 귀국을 지원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들 기관의 대외 명칭은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 110은 한국의 112와 같은 중국 공안 신고번호다. 2019년 5월 중국의 관영언론은 저장성 경찰이 스페인 마드리드의 ‘서비스 스테이션’을 통해 6건의 범죄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용의자 2명이 자수하도록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마드리드 요원들은 중국인 수배자를 데려와 앉힌 뒤 저장성에 있는 공안요원과 영상통화를 하게 했는데 영상 속 요원 옆에 그의 가족이 있었다.
중국의 해외공작 거점은 식당이나 편의점, 복덕방 등 일상적인 외양을 한 경우가 많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수원왕갈비통닭처럼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공안이 현지로 출국할 때도 경찰 신분을 밝히고 관광비자로 들어간다. 잘 보이는 곳에 숨는 게 전략이다.
전 FBI 중국 분석관 폴 무어는 중국의 공작 스타일을 ‘1000개의 모래알’이란 표현으로 설명했다. “어떤 해변의 모래가 공작 대상이라면 다른 국가들은 특수요원을 잠수함에 태워 보내 은밀히 모래를 담아오거나 인공위성 적외선 탐지장치 등을 이용해 모래 성분을 분석하려 할 것이다. 중국은 다르다. 1000명의 중국 시민들을 그 해변으로 하루 소풍을 다녀오게 한 뒤 옷을 털게 해 1000개의 모래알을 수집할 것이다.”
일종의 ‘인해전술’로 많은 사람에게 제한된 임무를 부여해 전체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중국 비밀경찰의 정체를 밝히려면 해외 각지에 정교하고 촘촘히 연결된 네트워크를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외로 간 범죄자는 하늘에 떠있는 연과 같다.”
상하이 공안의 한 간부는 중국 관영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목표물이 세계 어디에 있든 중국에 남은 가족을 볼모로 잡고 있어 연에 달린 줄을 잡아당기듯 중국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은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약 23만 명이 형사처벌 절차를 밟기 위해 자발적으로 귀국했다고 밝혔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아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백종원, 고향서 밝힌 꿈 “시장이 돼볼까 한다”
- “김만배, 권순일에 ‘언론사 회장직’ 제안”
- 北 병력 120만 명, 러시아 제치고 세계 4위…한국은?
- 지구에 희소식…“오존층 점점 회복…2040년이면 1980년대 수준으로”
- 골목길 ‘빵’ 경적에 놀란 할머니, 넘어져 크게 다쳐…누구 잘못?
- 中, 한국인 단기비자 발급 전격중단…입국규제 보복
- 홍준표 “이재명, 적폐청산 부메랑 맞아…원망은 文에게”
- 나경원, 저출산委 부위원장직 사의…대통령실 “들은 바 없다”
- 불륜설 휘말린 UN 최정원 “말도 안 돼…가족도 알고 지낸 동생”
- 경찰 기지로 겨우 잡은 데이트폭행범…법원은 풀어줘,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