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덕 칼럼] SNS, 가짜뉴스 그리고 민주주의
주범은 SNS 가짜뉴스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1990년대 초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를 꿰뚫어보고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작, '역사의 종언'. 이 저서로 세계적 석학 반열에 오른 그가 작년 매일경제가 주최하는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했다. 그러나 30여 년 전 상황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세계. 그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전달해야 했다.
그 주장의 일단이 '자유의 복원'이란 주제로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와 나눈 대담에 녹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형 플랫폼 기업들은 자기들이 선호하지 않는 의견은 침묵시키고 특정 의견은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에 긍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디지털 공간에서의 소통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제 도하 신문 1면에 장식된 브라질 폭동은 그 적나라한 실상이다. 작년 10월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 수천 명이 연방의회 의사당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노란 반팔 티셔츠를 입은 군중들은 의회와 대통령궁, 대법원에 난입해 소리치고, 단상에서 미끄럼 타고, 둔기로 창문을 깨뜨리고 불을 질렀다. 이유는 대선 결과 불복.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냐고 묻는 건 순진하다. 후쿠야마가 핵심을 짚었다. 민주주의의 총아가 될 줄 알았던 디지털 공간에서의 소통, 소셜미디어(SNS) 때문이다. 그 시간 미국 플로리다에 체류 중인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패배 선언을 하지도 않았으며 새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는 곧바로 지지자들의 디지털 광분으로 이어졌고 임계질량에 이르자 폭동으로 점화된 것이다.
꼭 2년 전,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도 그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이 의회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워싱턴 의사당을 점거했다. 시위대 4명이 숨지고 경찰도 100명 넘게 다쳤다. 트럼프와 그 측근들의 책임을 규명하는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역시 소셜미디어가 생산한 가짜뉴스가 불복 여론을 확대재생산한 탓이다.
트럼프가 열렬히 지지하는 언론인(?) 중에 알렉스 존스라는 텍사스 출신의 라디오 진행자가 있다. '인포워즈'라는 미디어 회사를 차리고 유튜브를 찍고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인물이지만 그야말로 음모론자고 가짜뉴스 생산자이다. 2020년 대선 결과를 부정하는 뉴스를 수없이 내보낸 그가 얼마 전 미국 최악의 총기 참사 중 하나인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을 날조라고 주장하다가 사망자 유족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이에 대한 텍사스주 법원의 평결이 놀랍다. 약 15억달러의 배상금 지급 명령. 우리나라 돈으로 2조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그 의미를 나름 해석하자면 이런 것이다. "가짜뉴스든 진짜뉴스든 표현의 자유는 인정해줄게. 당신이 떠들고 싶으면 떠들어. 단, 그것 갖고 비즈니스 하면 안돼. 어떤 형태로든 이익을 추구해선 안되지."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저널리즘은 실종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기자들이 언론사에 들어오면 선배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은 두 가지다. 하나, 사실(fact)은 진실(truth)과 다르다. 둘, 사실을 추적하면 할수록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기자는, 언론사는 사실을 추적하는 직업이고 조직이다. 언론계 선배인 소설가 김훈은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은 육하원칙으로 쓴 글"이라고 했다. 이념과 정치적 편향에 포획돼 마치 의견을 사실처럼 주장하고 그런 게 용기 있는 참언론으로 포장되는 게 후쿠야마가 말한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래서 그는 거대 플랫폼 기업이 소셜미디어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권을 쥐는 것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나도 그 주장에 동의한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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