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대중의 망상에 폭행당한 브라질 민주주의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2023. 1. 1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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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명의 시위대 속 경찰은 한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시위대는 긴 봉으로 기마 경찰을 마구 때리고 손으로 잡아당겨 말에서 끌어내린다. 바닥에 떨어진 경찰은 구타당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시위대는 계속 전진한다.

브라질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궁 등 입법·사법·행정 3부 기관은 지난 8일 수천 명 규모 시위대에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이들은 작년 10월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3부 기관에 난입해 폭력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의회 앞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넘은 뒤 경찰의 저지를 뚫고 건물을 점거했다. 둔기로 유리창을 부수는가 하면 예술 작품을 손상시키고 서류를 탈취했다.

이번 폭동은 2021년 1월 6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통령선거 패배에 불복해 미 국회의사당을 공격한 사건과 판박이다. '브라질의 트럼프'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대선 1년 전부터 아무 증거도 없이 "전자투표 오작동 가능성이 있다"며 대선 불복 운을 띄웠다.

브라질 민주주의가 폭력에 공격당한 것은 1964년 군 쿠데타 이후 59년 만이다. 시위대는 쿠데타를 촉구하는 '(군부) 개입'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브라질 싱크탱크 이가라페연구소의 호베르트 무가는 "이번 폭동은 1964년 군 쿠데타 이후 브라질 민주주의에 가장 중대한 위협"이라면서 "폭력적인 봉기는 민주주의가 결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폭동이 '대중의 망상'에서 촉발됐다고 분석했다. 독재자 한 명이나 권력을 장악하려는 군대의 명령이 아니라, 대중이 주체이기에 더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수년간 가짜뉴스에 길들여진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망상이든 선동이든 브라질의 민주주의는 짓밟혔다. 브라질은 60년 전으로 후퇴할 것인가, 위기를 추스르고 나아갈 것인가. 세계가 브라질의 시민의식,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의 리더십을 지켜보고 있다.

[권한울 글로벌경제부 hanfenc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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