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철거된 尹정부 풍자작품, 작가들이 직접 설명했다 [이슈+]

조성민 2023. 1. 10. 17: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방인가 풍자인가…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가들이 직접 밝힌 이번 작품 의도와 설명
‘최고 권력’ 尹 대통령 부부 주요 풍자 대상
10·29 참사, 정부 무능·부패 지적한 작품도

장상일 다큐멘터리 감독은 ‘굿바이전 in 서울展’ 개막일인 지난 9일 새벽 5시쯤 국회 의원회관을 찾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난 1년 예술작가 30명이 공들여 만든 작품 80여점이 모두 뜯겨나간 채, 그림 걸개만 앙상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었다. 다시 오전 8시쯤 전시장 분위기를 찍으러 다시 현장을 찾은 장 감독은 출입데스크에서 “굿바이전 행사관계자들은 더이상 출입이 허가 안된다”는 말을 듣고 발을 돌려야 했다.

운영위원장을 맡은 고경일 상명대 교수는 10일 세계일보에 “자기 아이가 납치된 엄마의 심정”이라며 “전시장에서 작품을 건들기만 해도 소송당하거나 경찰에 끌려가는 일도 있다. 작가 작품을 작가에게 말도 없이 철거한 것은 아이를 납치한 것 이상으로 충격이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고 교수는 “윤석열, 김건희를 그리기만 해도 알아서 설설 기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그 두 사람은 개인이 아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일하는 일꾼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어준 뉴스공장(벙커1카페)에서 전시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A씨는 “지난 주말부터 전시를 주관한 민형배 의원실 등으로 국민의힘 측에서 항의가 빗발쳤다”며 “오프닝부터 소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렇게 기습 철거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가들이 큰 용기를 내 시작한 전시이고, 처음 전시 제안서에도 분명히 윤석열 정부에 대한 풍자 전시라고 명시하고 승인까지 났는데 어이가 없다”고 했다.

◆작가들이 직접 밝힌 작품 설명은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그 경계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하지만 내용 때문에 작품이 전시되지 못하고, 이를 둘러싼 논쟁조차 억눌리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세계일보는 10일 이번 전시를 주최한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과 굿바이전시조직위원회, 그리고 작가들에게 직접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전시작품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먼저 고경일 교수 그림에는 침몰하는 배를 붙잡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고 교수는 “민심은 이미 떠났고 최고 권력자는 홀로 섬처럼 남아있는데 자신들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재 상황을 풍자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레오다브 작가의 그림은 붉은색 배경에 윤 대통령 부부가 강조돼있다. 레오다브 작가는 “윤석열보다 위에 있는 김건희를 풍자한 작품”이라며 “주술에 기대고 윤석열을 압도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누구인지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구영 작가의 작품에서는 윤 대통령 부부가 거인으로 등장한다. ‘민주주의를 배회하는 지나치게 크고 불쾌한 거인’이라는 주제를 다룬 이 작품에 대해 이 작가는 “민주주의, 희망, 평화, 국민을 상징하는 노란 꽃들이 우리의 일상 공간에 피어 있다”라며 “거대한 권력자가 우리의 일상(노란꽃)을 침탈하는 현재 상황 속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끔찍한 남한의 모습을 담았다”고 말했다.
10·29 이태원 참사를 다룬 작품도 여럿 보인다. 정민주 작가의 작품에는 참사 유가족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마약’ ‘부검’ ‘사고’를 언급한 이들이 보인다. 정 작가는 “10·29 참사의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윤석열 정권을 풍자했다”며 “참사 희생자들을 마약범으로 몰고 가려 한 끔찍한 검찰의 프레임을 까발리고 싶었다”고 했다. ‘오구오구’란 제목이 붙은 아트만두 작가의 그림은 “윤석열 정권에서 10·29 이태원 참사라는 끔찍한 행정실패의 책임자를 계속 옹호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의 무능과 부패 등을 지적한 작품들도 있다. ‘돌잽이’란 이름이 붙은 이화섭 작가의 작품은 “돌잽이를 패러디해서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부패, 재물욕심을 탐하는 상황을 풍자”했다. 이 작가는 “무능력한 권력이 안보의식 제로에 방어능력까지 제로인 상황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조아진 작가의 ‘선무당의 나라’는 “윤석열을 조종하는 김건희와 천공을 대놓고 풍자한 디지털 작품”이라며 “1년도 안 된 서투른 초보 정권의 황당한 상황”을 만화로 그려냈다. 박재동 작가는 윤 대통령 부부와 장모 최은순씨를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정견을 발표할 때 위와 같은 공약을 했고 그에 대한 김건희씨와 최은순씨의 대화를 그렸다”며 “내가 예상한 그대로 지금 진행되어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 vs “인신모독” 정치권 공방

국회사무처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던 윤석열 정부 풍자 작품들을 철거한 일을 놓고 정치권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앞서 전시 허가를 내줬던 국회사무처는 전날 오후 7시쯤부터 세 차례 공문을 보내 국회사무처 내규를 들어 전시작품의 자진철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등 타인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회의 또는 행사로 판단되는 경우 사무총장이 회의실 및 로비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민주당 강민정·김승원·김영배·김용민·양이원영·유정주·이수진(동작을)·장경태·최강욱·황운하 의원과 무소속 민형배·윤미향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사무처가 오늘 새벽 기습적으로 전시작품 80여 점을 무단철거했다”며 “국회가 표현의 자유를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회사무처는 풍자로 권력을 날카롭게 비판하겠다는 예술인의 의지를 강제로 꺾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 의원들이 윤석열 정권 풍자를 명분으로 대통령과 배우자를 비방하는 전시회를 국회에서 주최하려 했다”며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대선 불복의 헌법정신 파괴를 자행하려는 민주당 세력을 강력 규탄한다”고 맞섰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구두 논평을 통해 “국가원수에 대한 인신모독”, “저질 전시회”라고 깎아내렸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