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 분석으로 웃은 박항서의 라스트 댄스
베트남의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64)은 아빠처럼 선수들과 소통하는 ‘파파 리더십’으로 유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략가의 면모도 숨겨있다. 상대의 약점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면서 승리의 물꼬를 열었기에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최강 반열에 올려놓았다.
박 감독이 ‘라스트 댄스’를 예고한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 일렉트릭컵의 승승장구도 마찬가지다. AFF 가맹국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유일한 두 자릿수(96위)인 베트남은 조별리그부터 4강까지 14골을 터뜨리는 동안 단 한 골도 실점하지 않았는데 단순히 전력만 강해선 불가능한 결과다.
박 감독의 현미경 분석이 효과를 발휘한 것은 지난 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막을 내린 인도네시아와 4강 2차전(2-0 승)이었다. 적지에서 열린 1차전에서 0-0으로 비기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상대를 무너뜨릴 힌트는 얻었다. 인도네시아 수비가 뒷공간이 허술할 뿐만 아니라 공중볼 싸움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박 감독은 철저하게 인도네시아의 약점을 노렸고, 그 결과가 응우옌 띠엔린의 멀티골로 나왔다. 띠엔린은 전반 3분 후방에서 넘어온 장거리 패스를 경합 끝에 페널티지역에서 받아낸 뒤 선제골을 터뜨리더니 후반 2분에는 코너킥 상황에서 머리로 방향만 바꾸는 추가골까지 책임졌다.
박 감독은 “베트남은 지난 26년간 미쓰비시컵에서 인도네시아를 이기지 못했다”며 “1차전에서도 비겼는데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 이 기록을 깨자고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오늘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노력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웃었다.
박 감독은 이제 미쓰비시컵에서 화려한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2018년 우승으로 처음 자신의 이름을 알린 무대에서 다시 한번 정상을 되찾을 때까지 한 결음만 남겨놨다.
박 감독이 결승전 상대인 말레이시아와 태국에 대한 분석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 감독은 말레이시아와 태국의 4강 1차전부터 코칭스태프를 현장에 파견했다. 지난 대회 준결승에서 베트남에 패배의 아픔을 안긴 태국에 대한 정보는 충분하지만, 또 다른 한국 지도자가 지휘봉을 잡은 말레이시아는 이제 분석을 시작한 단계다.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한 말레이시아가 결승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결승전은 13일과 16일 홈앤드어웨이로 열린다.
박 감독은 “우승을 위해 베트남의 정신으로 경기에 임하고 베트남 축구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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