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료] 비대면진료, 문이 열리고 있다
(지디넷코리아=김양균 기자)정보통신 기술에 힘입어 보건의료 영역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전 세계는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를 통한 신종 감염병, 초고령화 시대, 지역 간 건강격차 해소 등 우리 앞에 놓인 적대적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를 디지털 헬스케어 원년으로, 지디넷코리아는 ‘미래의료’ 연재를 통해 국내·외 디지털 헬스케어의 산업 동향과 가능성 및 역작용을 분석함으로써 가장 정확한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편집자 주]
1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여당 국회의원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장지호, 비대면진료 플랫폼 닥터나우의 이사였다. 그가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이날 국회 토론회를 만들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에 나선 김기현 의원도 왔다. 뿐만 아니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간사인 강기윤 의원과 같은 당 이종성·백종헌·박수영·홍석준 의원들이 총출동했다. 여당 중진의원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은 비대면진료에 대한 정부여당의 관심도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선진국은 이걸 다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윤석열 정부 5년 중에 글로벌 스탠다드는 따라가야겠다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제가 이걸 국정과제로 넣었습니다.”
박수영 의원의 말이었다.
김기현 의원이 축사를 위해 연단에 서자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유력 당권 대표 후보자인 그의 위세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김 의원은 과거 한나라당 당시의 일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14~5년쯤 된 것 같은데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 한나라당 의원들을 모아놓고 스마트폰 사용법 시범을 한 적이 있어요. 십 수 년 사이에 세상이 너무 바뀌었습니다. 원격진료를 추진할 때 엄청난 반대로 법안이 다 막힌 게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비대면진료는 어려운 과제인데, 윤 정부는 꼭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거예요.”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던 이종성 의원은 장애인의 이동 어려움 문제를 들어 비대면진료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려 했다.
“척수장애인은 외출을 하려면 관장을 해서 속을 다 비워내야 합니다. 혈압약을 하나 받으러 병원에 가면 5분이에요. 저는 중중장애인에게 비대면진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의료계에서는 오진과 병원 쏠림현상을 우려했고, 법안은 의료계의 우려를 반영해서 매우 보수적으로 대상을 좁게 잡아놨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담긴다면 제도가 의료 접근성을 높이리라 기대합니다.”
홍석준 의원은 국민의힘 규제개혁추진단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와 비대면진료의 수가 반영 등을 해결하면 비대면진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도 비대면진료를 다하고 있는데 왜 우린 이걸 못하고 있습니까? 이걸 의료계의 단순한 반대로 치부하면 안 됩니다. 의료계의 합리적 비판을 우리가 수용하지 못해서죠. 수용성, 안전성, 수가 문제는 극복할 수 있어요. 의료계의 입장을 반영해서 할 수 있어요.”
이어진 기념촬영에서 국회의원들과 비대면진료 기업 종사자들은 “비대면진료, 파이팅”이라고 여러 번 외쳤다.
일단 법부터 통과해라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지난 2020년 2월 24일 감염병 확산방지를 이유로 들어 코로나19 ‘심각’ 단계 동안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진료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유행 국면을 지나면서 현재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를 제외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 대부분의 방역지침이 해제된 상황이다. 그러니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대면진료도 중단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틈새를 열었다면 결정적인 불을 지핀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윤 대통령은 비대면진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대선 당선 이후 국정과제에도 비대면진료의 제도화 추진을 포함시켰다.
그러자 이전에는 비대면진료 허용을 포함한 의료법 개정안을 ‘민감사안’으로 치부, 구체적인 언급조차 꺼리던 복지부는 본격적으로 제도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올해 기준 비대면진료 건수는 약 3천400여건. 현재 복지부는 나름의 데이터가 축적됐다고 보고 있다. 이에 장관조차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공식화했다.
2023년도 업무보고에서 복지부는 ‘핵심정책’으로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의료계와 상시 협의체를 가동해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명 ‘스마트관리’를 위해 비대면진료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복지부는 업무보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포함시켰다.
“효율적인 상시관리 위해 비대면진료 제도화 추진, ICT 기반 건강관리 플랫폼 활용 일차의료 중심 만성질환자 관리 강화.”
현재 약 배송을 둘러싸고 의료법과 약사법 저촉의 여지가 존재한다. 환자 유인행위로 판단될 부분도 지적되고 있다. 법과 위법의 경계에서 각종 비대면진료 플랫폼간의 영업 경쟁이 벌어지는 탓에 복지부는 지난해 7월 18일 ‘한시적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업계의 자정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법적 강제력은 없는 가이드라인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곧장 나왔다. 정말로 제도권 안에서 해당 사안을 다뤄야 할 상황이 온 것이었다.
빗장 열린 이후 미래의료 추측만 무성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비대면진료는 공급자(의사·의료기관)의 보조적 의료 수단으로써, 정부(복지부)가 관리를, 산업계는 서비스 제공을 하는 방식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조차 30년 가까이 논의가 이뤄져온 것이다. 그럼에도 비대면 진료 남용과 약 처방 등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요원한 부분이 남아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꾸준한 관리와 제도 보완”을 말했다.
백남종 분당서울대병원장은 비대면진료가 활성화되어도 전체 진료 건수의 2%~3% 가량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이미 국민들은 안전하게 비대면진료를 활용하고 있고 고혈압약 등 평소 복용하는 약을 편의상 비대면진료로 처방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비대면진료는 진료의 새로운 툴로 보면 됩니다. 의료근간을 흔드는 것이 아니고요. (비대면진료가 가져올) 미래의료는 예방·예측가능입니다. 환자가 직접 자기 혈당과 협압을 관리하는 원격모니터링의 수단으로 비대면진료를 바라봐야 합니다. 재택의료 시 원격의료는 좋은 툴이 될 겁니다.”
즉, 비대면진료는 진료의 한 형태로 기존 의료체계를 뒤엎는 새 판을 짜는 게 아니고, 대체가 아닌 보조적 수단으로, 한시적 비대면 진료의 효과를 분석해 네거티브 규제를 대입해 플랫폼 등 업체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의무사항 및 보험 등을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는 의료 및 경제적 효용 가치까지는 엄밀히 분석하자는 제안도 함께 내놨다.
그런데 이날 토론회에 온 여당 중진 의원들의 발언을 뜯어보면 그들은 중립적이다 못해 신중한 태도로 일관했다. 사실 그들이 비대면진료를 둘러싼 첨예한 이해관계를 모를 리 없다. 또한 새로운 변화가 야기할 역작용의 가능성도 감지했을지 모른다. 그러니 조심하는 것이고, 조심하긴 산업계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은 돈을 벌어야 산다. 비대면진료 서비스로 먹고사는 업계는 본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이 만들어져 국회를 통과되길 바란다. 이날 경제성, 미래 먹거리 등의 발언이 빈번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작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국민’, ‘건강’, ‘생명’ 이었다. 심지어 장지호 회장은 “산업계는 의료계가 비대면진료를 주도하고, 정부가 관리를 하며, 중계 사업자들은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비대면진료가 안착되길 바란다”했다.
해당 사안을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알고 있는 그가 자진해 몸을 낮추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은 제도화가 사업 지속을 위한 급선무 과제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즉, 현 시점에서는 일단 문이 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최종 승자는 누구인가
문이 열린 이후에 대한 전망은 제각각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본격화나 의료영리화 등 장단점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많다. 아직은 제도화 이후의 여러 가능성일 뿐이다. 그리고 다음 역시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
과거 닷컴 버블 당시 여러 플랫폼이 난립했지만, 현재는 공룡이 된 네이버와 카카오로 양분화됐다. 비대면진료 제도화 이후 네이버와 카카오가 비대면진료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맡게 되리란 전망은 전혀 새롭지 않다.
김양균 기자(angel@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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