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관장 "불행한 일…'갑질'이란 단어 없는 미술관 꿈꿨다"
'2023 미술관 전시·중점사업' 공개 자리에서
"감사결과 안타까워…혁신안 만드는 계기로"
구입못한 소장품 "5천만원 상향조정"은 부당
"문체부 감사의도는 몰라…대신 알려줬으면"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감사와 관련해 얘기하라는 거 같은데….” 힘들게 운을 뗀 표정에는 곤혹스러움이 역력했다. 하지만 잠시 숨 고르기를 한 뒤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감사로 지적을 당해 안타깝다. 열심히 하라는 채찍과 격려로 알겠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문화체육관광부 특정감사’ 결과와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윤 관장은 1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연 ‘2023 전시와 중점사업’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신년 운영계획’과는 결이 다른 질문들에 맞닥뜨렸다. 전날인 9일 문체부가 ‘소속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위법·부당한 조직관리와 업무처리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감사결과를 16건에 걸쳐 장황하게 발표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마땅히 현장에 모인 눈과 귀가 ‘신년 운영계획’은 제쳐 두고 ‘감사결과’에 쏠렸고, 미술관 수장인 윤 관장의 입에만 집중했던 거다.
하지만 명쾌한 해명은 나오지 않았다. 윤 관장은 “사실 감사결과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했고, 언론을 접한 뒤 결과를 알았다”며 “내용을 파악한 뒤 미술관 운영에 큰 자산으로 삼고 혁신안을 만드는 좋은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했다.
문체부의 이번 특정감사는 지난해 10월 24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뤄진 것으로, 당시 갑질과 부당인사 등 국립현대미술관 내부 운영과 관련한 논란이 제기되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가 파고든 16건에는 ‘규정과 다르게 미술작품을 구입’하고, ‘미술관문화재단이 국고에 납입할 수익금 3200만원을 직원 격려금으로 지급’했으며, ‘경매로 소장품을 구입할 때 학예직 7~8명에게만 경매 일정과 작품안내를 해 작품 구입 제안을 일부 소수 학예직 직원이 독점’했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 이외에 ‘미술관의 일부 부서장들이 직원에게 비인격적인 행위를 하는 이른바 ‘갑질’을 인지하고도 관장은 이를 방관해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윤 관장은 이 중 ‘갑질’ 부분에 대해 “불행한 일”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나왔는데, 갑질이란 단어가 없는 미술관을 꿈꿨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이 부분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는 다짐을 전하기도 했다.
‘경매를 통해 소장품을 구입할 때 소수 학예직 직원이 독점’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작품을 구입할 땐 작품 추천이 쉽지 않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작품을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관 소장품을 연구하고, 이 작가의 이 작품이 왜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작가면담, 현장조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전문가 얘기를 들었던 것이다. 몇명이란 숫자는 중요치 않고 실제 내용이 중요하다.”
하지만 소장품 구입 때 그런 전문가 의견과 다르게 구입가를 조정했다는 감사결과를 두고선 “가치평가위원회는 평가액을 빡빡하게 하는 편”이라며 “매도자가 제시하는 가격과 엇비슷하면 매매가 성립될 텐데, 그 간격이 멀어지면 매매가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감사결과에서 지적한 작품인 테레시타 페르난데즈의 ‘어두운 땅(우주)’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문체부는 이 작품을 두고 “가치평가위원회의 저평가에도 불구하고 최고 5000만원까지 상향 조정했다”고 지적했던 터. 윤 관장은 “해당 작품은 평가와 매도자의 희망가가 멀어 구입도 하지 못했는데, 왜 5000만원 운운하는지 기사를 보고 놀랐다”며 반박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감사결과를 숙지하지 못했다’는 윤 관장의 발언은 의문을 키웠다. 윤 관장은 “감사문제는 해당 부서에서 검토를 시작했다”는 말로 에두른 뒤 “종합적 검토를 바탕으로, 나를 비롯해 해당부서가 개선할 건 개선하고, 재심의를 요구할 게 있다면 요구할 안을 만들 것”이라고 서둘러 마무리했다.
감사결과와는 무관하게, 내정자를 정해두고 수개월째 공석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에 대한 질문도 피해 가지 못했다. 윤 관장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늦춰졌지만 며칠 내 임용할 것”이란 말과 함께 “학예실장은 공모로 진행돼 관장의 의지나 의사는 개입할 수 없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여름부터 학예실장 공모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최종합격자가 음주운전 중징계 처분을 받은 데 이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사실이 드러나며 의혹을 키워왔다.
문체부의 이번 ‘특정감사 결과’ 발표는 이례적이다. 때문에 ‘배후설’ ‘괘씸죄’ 등 설왕설래가 있어왔던 터. ‘왜 국립현대미술관인가’를 묻는 질문에 윤 관장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문체부의 감사의도는 잘 모르겠다. 누가 대신 알려주면 좋겠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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