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20, 21차 직권재심…희생자 60명 전원 무죄

오영재 기자 2023. 1. 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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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희생자 60명의 명예가 회복됐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10일 오전 검찰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20차 직권재심을 열고 희생자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대상인 희생자들은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제주도 일원에서 내란죄 또는 국방경비법 위반죄로 불법 군사재판에 회부, 유죄 판결을 받고 형무소 등에서 수형인 생활을 하다 총살 또는 행방불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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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제주지법 제4형사부, 10일 오전 잇따라 진행
"자수하거나 집에 데려오면 살려주겠다" 말에 속아
"땔감하러 나오라" 경찰지서에 속은 형제 행방불명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제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 날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 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지석에 유족들이 찾아와 참배하고 있다. 2022.04.03.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제주4·3 희생자 60명의 명예가 회복됐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10일 오전 검찰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20차 직권재심을 열고 희생자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대상인 희생자들은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제주도 일원에서 내란죄 또는 국방경비법 위반죄로 불법 군사재판에 회부, 유죄 판결을 받고 형무소 등에서 수형인 생활을 하다 총살 또는 행방불명됐다.

검찰은 이날 "제주 4·3사건은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참으로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피고인들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군·경에 연행돼 군법회의에 의해 처벌받은 것으로 보이고, 내란죄 또는 국방경비법위반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희생자 측 변호인은 이날 최후변론을 통해 희생자들이 연행된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4·3 당시인 1948년경 '아들을 집에 데려오면 살려주겠다'는 토벌대 말에 속은 부친이 직접 아들을 집에 데려왔다. 당시 15세였던 아들은 토벌대에 의해 끌려갔고 이후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이어 "'자수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에 경찰서를 찾은 뒤 행방불명된 희생자,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주겠다'는 말에 속아 내려갔지만 이후 형무소에 수감된 희생자, 경찰지서로부터 '땔감을 도우러 나오라'는 말에 나갔다가 행방불명된 형제 등 피고인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공소사실과 같은 내란죄 등을 저지른 일이 전혀 없다"며 재판부에 무죄를 요청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유족들은 4·3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고 김창식 희생자의 조카 김군선씨는 "저는 당시 어려서 자세히 모르지만 어머니로부터 자주 들었다"며 "김창식 삼촌은 1948년 10월께 조천읍 중산간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중 무장한 군인들이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사람들을 무작위 총살하는 과정을 보고 대정 마을로 피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다 군에 의해 연행돼 옛 주정공장터에 끌려갔다. 이후 대전형무소에서 삼촌은 저의 부친과 5촌삼촌과 함께 1950년 대전 골령골에서 군에 의해 처형됐다"며 "이러한 비극의 역사를 철저히 밝혀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 장찬진·장찬림 희생자의 외조카 조평림씨는 "어머니로부터 삼촌들을 '피어보지 못한 꽃'이라고 들었다"며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외삼촌 2명이 있다. 4·3당시 행방불명됐다'고 알려주셨다"고 말했다. 앞서 변호인이 언급한 희생자 중 땔감을 하러 나오라는 경찰지서 말에 속아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이다.

이어 "솔직히 '4·3유족'이라고 하지만, 전혀 신경 안 쓰고 살아왔다. 인생 살아가는 것도 힘들었다"며 "그러다 작년 10월에 4·3관련 부서에서 전화가 왔고, 오늘 법관 앞에 장찬진, 장찬림 이 두 분의 이름이 올려지고 기억해준 것에 감사하다. 목이 매어 말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범죄에 증명이 없는 때에 속하므로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라고 판시했다.

선고를 마친 재판부는 이날 21차 직권재심을 열고 희생자 30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oyj4343@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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