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대장암·췌장암, 항암제 하나로…6개월 남은 환자, 전이 거의 사라져
"암 치료의 주체가 암에서 유전자로 옮겨왔습니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공유하는 암종 전체를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김혜련 세브란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암종불문' 항암제 등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통적인 항암 치료는 암 종류에 따라 다른 약을 썼다. 폐암에는 폐암 치료제를, 간암에는 그에 맞는 약을 썼다.
암종불문 항암제는 전통적인 항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꿨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현한다면 폐암, 대장암, 췌장암, 침샘암 등 암 종류와 상관없이 해당 유전자를 억제하는 항암제를 쓸 수 있다. 비소세포폐암만 해도 KRAS, ALK, ROS 1 등 다양한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병 원인이다. 김 교수는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있기 때문에 동일한 암종이라도 같은 약물로 치료했을 때 다른 반응을 보인다"며 "유전자 돌연변이에 맞는 표적 약제를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경성 타이로신 수용체 키나아제(Neurotrophic tyrosine receptor kinase·NTRK) 유전자 융합은 대장암, 췌장암, 폐암, 육종, 유방암 등 수많은 암을 유발한다. NTRK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와 비정상적으로 융합하면, 신경계 발달과 기능에 필수적인 TRK 수용체가 이상 발현하면서 종양 성장을 촉진하는 원리다.
'라로트렉티닙'은 NTRK 유전자 융합을 억제하는 대표적인 표적 항암제다. NTRK 유전자 융합으로 발생하는 암이라면 종류와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폐암 환자 100명 중 1명 정도에서 해당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며 "침샘암은 암 자체는 희귀하지만 약 20~30%에서 NTRK 유전자 융합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침샘암은 24가지 종류가 있는데 분비성 침샘암에서 NTRK 유전자 융합이 나타날 확률은 75% 이상이다. 또한 분비성 유방암과 영아섬유육종에서도 75% 이상 확률로 NTRK 유전자 융합이 발현한다.
성인 환자 116명 대상의 임상 시험 결과, 라로트렉티닙은 다양한 암종에서 종양 크기가 30% 이상 줄어드는 지표인 '객관적 반응률'을 약 70% 기록했다. 김 교수는 "이 중 일부는 고형암인데도 불구하고 완전 관해율이 약 10%라는 점은 굉장히 놀랍다"며 "전체 생존율은 아직 중앙값에도 도달하지 않아 앞으로 더 길어질 수 있다. 환자가 대체로 2차 이상 약제를 사용했음에도 치료에 실패해 더는 옵션이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수치는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라로트렉티닙은 안전성도 양호했다. 약물 이상반응은 1등급에서 5등급까지 나뉘는데 숫자가 낮을수록 증상이 경미하다. 대부분 이상반응은 1~2등급이었다. 빈혈(7%)을 제외하고 모든 3등급 이상반응은 환자의 5% 미만에서 보고됐다.
김 교수는 NTRK 저해제의 실체 처방 사례를 설명하면서 세 명의 환자 사례를 소개했다. 우선, 뇌 전이가 동반된 65세 폐선암 환자가 있다. 일반적인 항암제에 면역항암제까지 세 가지 약제 처방에도 반응률이 5~10%를 유지하며 치료에 차도가 없었다. 이후 차세대염기서열 검사(Next Generation Sequencing·NGS)에서 NTRK 유전자 융합이 발견돼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김 교수는 "네 번째 약제로 라로트렉티닙을 사용했다. 간과 폐, 림프절에도 전이가 있었는데 한 달 후 종양 크기 많이 줄어들어 2년 이상 생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NTRK 유전자 융합의 폐암 발병률은 1% 정도로 드물지만 발견만 한다면 라로트렉티닙과 같은 약제로 효과적으로 병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했다.
침샘암의 일종인 침샘관암을 앓는 환자도 NTRK 저해제로 장기 생존을 유지했다. 이 환자는 2018년부터 라로트렉티닙을 복용했다. 폐를 포함해 온몸으로 암이 전이됐으나 이후 점점 줄어들어 종양이 거의 없어질 정도가 됐다. 64세의 또 다른 침샘관암 환자도 양측 폐와 능막까지 암이 전이됐으나 2021년 라로트렉티닙 복용 이후 폐 전이가 거의 모두 사라졌다.
김 교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환자의 경우 NTRK 저해제를 복용하지 않고 기존 치료법을 따랐다면 기대 여명이 6개월 미만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로트렉티닙은 2020년 5월 '국소진행성·전이성 또는 수술적 절제 시 중증 이환의 가능성이 높으며 기존 치료제 이후 암이 진행됐거나 현재 이용 가능한 적합한 치료제가 없는 고형암'에 사용하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4월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17개 암종에서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NGS 검사에서 NTRK 유전자 융합이 발견돼야 처방받을 수 있다. NGS 검사는 건보 적용으로 비용의 절반을 정부가 지원하므로 요새 많은 암 환자들이 받고 있다. 보통 1차 항암 치료를 진행하는 단계에서 일부 조직을 떼어내 NGS 검사를 실시한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폐암 4기는 마치 사망 선고이고, 환자들이 실망하면서 여명에 대해서만 궁금해했다"며 "그러나 유전자 변이의 유무, 유전자 변이가 없는 경우에는 면역항암제 치료에 대한 초기 반응이 환자의 전체적인 생존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제는 환자의 평균 여명을 수치로 말하는 게 조심스러운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많은 치료의 길이 생겼다는 의미이다"며 "NTRK 유전자 융합의 경우 표적을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이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검사 비용과 치료제 모두 급여가 되고 있어 많은 환자가 혜택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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