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이산화탄소로 만드는 생분해플라스틱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1. 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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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학술지 ‘네이처’는 2023년 새해 첫 호인 5일 자에 다소 김빠지는 연구 결과를 실었다. 출간되는 논문과 특허의 파괴성(disruptiveness)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것이다. 파괴성은 기존 연구 성과나 이론을 뒤집을 혁신적인 결과를 뜻하는 용어다. 한마디로 연구 경향이 혁신보다는 개선에 치우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논문(또는 특허)의 파괴성이 크다면 후속 연구에서 그 논문에 인용된 참고문헌 대신 그 논문을 인용할 것이다. 이런 정도를 수치화해 ‘CD 지수’로 나타내는데 가장 낮은 –1에서 가장 높은 1 사이의 값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파괴성이 90%나 감소한 데에는 출간되는 논문이나 특허 건수가 급증한 것도 주요 원인이 아닐까. 참신한 연구 성과의 비율은 크게 떨어졌지만, 절대량이 급감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 개선 연구 역시 상용화 연구에서는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이 실제 상품에 적용되려면 기존 제품과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경우 이 단계를 넘지 못해 실험실 단계에서 멈춘다.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파괴성이 큰 연구 성과가 몇 년 반짝 주목을 받다가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도 개선 연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상용화로 가는 길에서 기여도가 높은 개선 연구는 동시에 CD 지수가 큰 파괴적 연구 아닐까.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는 지난 반세기 동안 논문과 특허의 파괴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실렸다. 파괴성을 나타내는 CD 지수(출간 5년 뒤)의 변화 추세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네이처 제공

문득 지난달 학술지 ‘켐(chemistry(화학)의 줄임)’에 실린 한 논문이 떠올랐다. 오늘날 지구촌의 화두인 기후변화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바이오플라스틱 생산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는데, 기존 여러 기술을 개선한 뒤 절묘하게 엮어 파괴성이 큰 결과를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화학 시스템과 생물 시스템의 결합

미국 텍사스A&M대 연구자들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대신 원료로 써서 생분해성 플라스틱인 PHA를 만드는 화학-생물(chem-bio) 융합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산화탄소를 에탄올이나 아세테이트 같은 탄소원자 두 개짜리 화합물(이하 C2)로 바꾸는 산화환원 셀 시스템과 C2를 먹이로 삼아 PHA를 만드는 박테리아 세포 공장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합쳐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산화탄소(CO2)를 원료로 해서 바이오플라스틱(PHA)을 생산하는 화학-생물 융합 시스템을 보여주는 도식이다. 산화환원 셀에서 이산화탄소로 C2(ethanol, acetate)를 만들고 미생물 세포 공장에서 C2로 PHA를 만든다. 켐 제공

최근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하면서 새삼 화제가 된 그린 수소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 얻는 수소다. 이 시스템을 잠깐 살펴보면 먼저 산화전극에서 물분자가 산화되면서 전자(e-)와 수소이온(H+), 산소분자(O2, 기체)로 분해된다. 전선을 타고 환원전극으로 넘어온 전자가 주변 수소이온을 환원시키면 수소분자(H2, 기체)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시스템의 환원전극 환경을 바꾸면 수소 대신 메탄올이나 포메이트 같은 탄소원자 하나짜리 화합물(이하 C1)이나 C2를 얻을 수 있다. 환원전극으로 이산화탄소를 공급하고 수소이온의 접근을 막으면 전자가 이산화탄소를 환원시켜 화합물로 바꾸는 반응이 먼저 일어난다. 이산화탄소는 탄소원자 하나짜리 분자이므로 C2보다는 C1이 더 쉽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지난 2018년 구리 나노입자 촉매를 써서 이산화탄소에서 C1보다 C2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됐다. C1과 C2가 뭐 그리 큰 차이냐고 하겠지만 생물의 관점에서는 차이가 크다. 세포의 에너지/물질 대사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분자인 아세틸CoA의 아세틸기가 바로 탄소원자 두 개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C2는 미생물이 바로 쓸 수 있는 먹이다.

한편 생분해성이 큰 바이오플라스틱인 PHA는 이미 상용화가 됐지만 아직 널리 쓰이지는 못하고 있다. 석유로 만드는 기존 플라스틱에 비해 아직은 생산 단가가 너무 높아서다. 따라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것과 함께 또 다른 이점이 있다면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면 금상첨화인데, 두 번째로 맞춘 '새'가 바로 이산화탄소 절감이다.

물론 광합성을 하는 미세조류(남세균)로 PHA를 만드는 시스템도 개발됐지만, 아직은 효율이 낮다. 현재 상용화된 시스템에 쓰이는 미생물들은 포도당 같은 먹이를 PHA로 바꾸므로 그 자체로 이산화탄소를 소모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포도당 대신 전기화학 셀에서 만든 C2를 먹고 PHA를 충분히 만드는 미생물이 있으면 어떨까.

● 전극 용액과 배양액 하나로

연구자들은 PHA 합성을 비롯해 각종 화합물을 만드는 세포 공장으로 널리 쓰이는 미생물인 수도모나스 푸티다(이하 푸티다)에 주목했다. 푸티다는 토양 박테리아로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인다. 특히 1960년대 일본에서 발견된 균주인 푸티다 KT2440이 쓸모가 많다.

C2를 바로 쓸 수 있게 전극 용액과 미생물 배양 용액을 통일하면서도 이산화탄소로 C2를 효율적으로 합성하는 환원전극(cathode)을 만든 후, 유전자 5개의 발현을 조절해 대사회로를 바꿔 미생물이 바이오플라스틱(PHA)을 최대한 만들게 했다. 켐 제공

연구자들은 상용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점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먼저 화학 시스템과 생물 시스템의 효율적인 융합을 위해 C2가 만들어지는 환원전극의 용액과 미생물 배양액의 조성을 같게 만드는 연구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둘의 조성이 달라 전극에서 만들어진 C2를 분리한 뒤 배양액에 넣어주는 단계가 있어야 하므로 비용이 늘어난다.

연구자들은 환원전극 표면을 음이온교환막으로 감싸는 등 몇 가지 조치로 배양액 조성으로도 환원 반응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극에서 만들어진 C2가 용액의 흐름을 따라 순환하면서 미생물이 있는 배양기로 바로 공급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배양기의 미생물이 전극으로 넘어올 수 없게 중간에 필터가 설치돼 있다.

다음으로 푸티다 KT2440가 C2로 PHA를 좀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찾고 대사회로를 재구성하는 연구도 진행됐다. 식물의 녹말이나 사람의 지방처럼 PHA는 미생물이 세포 내에 저장하는 물질로 환경에 따라 그 양이 다르다. 예를 들어 당분은 많은데 질소 같은 다른 영양 성분은 부족하면 증식이 어려우므로 대신 세포 내에 PHA를 많이 저장해 훗날을 도모한다. 실험 결과 질소와 탄소의 공급비가 1:100일 때 PHA를 가장 많이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PHA의 합성과 분해에 관여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건드려 합성 관련 유전자 네 개의 발현량은 높이고 분해 관련 유전자 하나는 고장냈다. 그 결과 PHA 생산량이 세 배나 늘었다.

이렇게 다방면에서 개선한 화학-생물 융합 시스템의 PHA 생산 효율은 지금까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광합성(미세조류) PHA 생산 효율의 6.4배에 이르렀다(알고 보니 지난 2021년 발표된 국내 연구팀의 결과다).

본문만 19쪽에 이르는 이 논문은 흥미진진한 내용에 상용화 측면에서도 장밋빛 전망을 그리고 있지만 물론 앞날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개선이 모이다 보면 혁신(파괴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기에 연초에 자세히 다뤄봤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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