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레전드’ 이강철 책임감, 반드시 기억해야 할 헌신

김태우 기자 2023. 1. 1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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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철 감독은 대표팀과 소속팀을 모두 챙겨야 하는 강행군을 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자서…”

오는 3월 열릴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사령탑을 겸임하고 있는 이강철(57) kt 감독은 9일 귀국길에서 “피곤해 보인다”라는 취재진의 인사에 “비행기에서 잠을 못 잤다”고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이 감독은 대표팀 코칭스태프, 전력분석팀과 함께 5일 호주로 출국해 WBC 첫 판 상대인 호주의 이모저모를 관찰하고 돌아왔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만큼 신경이 곤두섰음이 얼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과 호주 사이의 거리도 거리지만, 호주 내부 일정도 만만치 않았다. 6일부터 경기를 볼 예정이었는데 하필 그 경기가 비로 취소됐다. 7일과 8일, 이틀 모두 더블헤더로 총 4경기를 밀도 깊게 관찰해야 했다. 호주 대표팀의 전력이 일본이나 다른 유력 국가들처럼 잘 알려진 것도 아니다. 발탁이 예상되는 선수들은 대다수 이 감독이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더 집중해서 봐야 했다. 강행군이었다.

국가대표팀은 전임 감독이라 해도 일정이 바쁘다. 현장에서 국내 선수들의 컨디션도 체크해야 하고, 해당 선수의 몸 컨디션이나 최근 분위기 등도 관계자들로부터 빠짐없이 들어야 한다. 다른 나라 선수들의 보고를 받는 건 늘 있는 일이다. 전력 분석도 해야 하고, 대회 구상도 짜야 한다. 엄연히 소속팀이 있는 이 감독으로서는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두 배다. 이번 대회에 걸린 팬들의 관심을 고려하면 그 이상일지 모른다.

2023년 WBC 대표팀 사령탑은 사실 선임 당시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치며 김경문 감독이 초라하게 물러난 직후였기 때문이다. 대표팀 감독은 말 그대로 ‘독이 든 성배’. 누구나 할 수 없어 영광의 자리이기는 하지만, 성적에 대한 책임감과 실패시 비난도 홀로 감수해야 한다. 실제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인사 중 박수를 받으며 떠난 이들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그래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은 자리였다.

그러나 이 감독은 조금 달랐다. 2021년 통합우승을 만들어낸 뒤 비시즌 중 만난 이 감독은 WBC 대표팀 감독직에 추천되고 있다는 말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선택이 된다면 해야 하지 않겠나”고 담담하게 말했다. 대표팀 감독에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자신이 그간 경력을 쌓은 이곳, 사랑을 받은 이곳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당대를 대표하는 스타였다. 1989년 해태에서 1군에 데뷔해 통산 602경기에서 152승을 거둔 실적에는 대투수라는 꼬리표가 전혀 아깝지 않다. 은퇴 이후에도 KBO리그와 꾸준히 함께 했다. KIA‧키움‧두산에서 코치를 했고, 2019년을 앞두고 kt 사령탑에 부임했다. 이 감독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다니는 영광의 수식어들은 모두 한국 야구와 KBO리그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이 감독은 그런 무대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래서 WBC 대표팀 감독직도 흔쾌히 수락했다. 한편으로는 10개 구단 감독 중 최연장자인 만큼 리그 발전에 대한 여러 가지 제언도 하고, 감독 및 현장의 의사를 조율하고 종합해 KBO에 전달하는 리더 몫까지 하고 있다. 이번 대표팀 소집 이후 각 구단들이 대표팀에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한 것도 결국 ‘이강철’이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기저에 깔려 있다는 평가다.

소속팀 kt의 스프링캠프도 20일 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 감독은 이제 kt와 대표팀을 모두 챙겨야 하는 본격적인 장정에 돌입한다. 캠프 명단도 짜야 하고, 훈련 일정도 조율해야 하고, 자신이 대표팀에 차출되는 동안 구단 운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전력 분석으로부터 계속 보고를 받는 동시에 16일에는 예비 소집을 해 선수들과 개별적인 면담도 예정하고 있다. 쉴 새 없는 일정이다.

이 감독은 2021년 한국시리즈 당시 좋은 선수를 최대한 활용하고, 승부를 걸 타이밍에는 독하게 거는 스타일로 압도적 우승을 쟁취했다. 데이터도 폭넓게 활용하는 동시에 스타플레이어 출신 특유의 ‘감’이 대적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포스트시즌에서도 이런 승부사적 기질이 드러난 장면이 몇몇 있었다. 단기전인 WBC에서의 용병술에도 기대를 거는 이유다.

물론 이번 WBC 대표팀의 성적이 어떨지, 이강철이라는 대표팀 감독의 평가가 어떻게 끝날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우승을 하지 못하는 이상, 4강에 가지 못하는 이상, 혹은 일본을 이기지 못하는 이상 비난을 한몸에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와 별개로,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기꺼이 봉사하겠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대회를 준비하는 그 헌신은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감독은 이왕이면 좋은 성적으로 팬들에 보답하며 이 여정을 마무리하겠다는 각오 속에 남은 일정을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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