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먹었어 방금, 오늘부터 박성훈 좋아하기로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3. 1. 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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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더 글로리' 박성훈, 사진제공=넷플릭스

길들여지지 않는 거칠고 사나운 야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에서 전재준(박성훈)은 바로 그런 존재다. 재준과 밀회를 즐기는 유부녀 동창 연진(임지연)이 그와 결혼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거다. 태어나 처음으로 지켜주고 싶은 존재(딸)와의 애틋한 만남에서조차 재준은 "어떤 개XX가"라고 윽박지르며 더러운 성미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이내 시익 웃으며 "삼촌 결심했다. 마음 먹었어 방금. 오늘부터 예솔이 지키기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꽤나 오싹한 사랑 고백이다. 

연진에 대한 재준의 감정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그러니까 다 가진 남자가 상간남을 자처하고서라도 연진의 곁에 머무르는 것일 테다. 결혼하지 않은 이유도 "결혼 생각 생기면 말해. 딴 년이랑 겸상은 안 한다"던 연진의 한 마디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을 듣던 재준의 씁쓸한 얼굴은 비릿하지만 순애보적이다. 갖고 싶은 건 다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지만 연진만큼은 구속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유지한다. 유일하게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만큼은 그는 어린애처럼 미숙하다. 결국 연진의 옆자리를 다른 남자에게 내주며 본인은 고작 몸만 나누는 사이가 됐다.

'더 글로리' 박성훈(왼쪽),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렇다고 동정할 필요는 없다. 재준은 실제로는 악랄한 성품을 지닌 뼛속부터 악질적인 상종하지 못할  '개XX'다. 사랑에만 서툰 나쁜 남자일 뿐. 세상이 그에게서 색을 앗아가는 결핍을 줬다고 해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이해받을 수는 없다. 동은(송혜교)을 빗속에 세워두며 음담패설로 모욕하던 재준은 그저 'X자식'일 뿐이다. 연진의 딸 예솔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걸 알았을 때도 그는 분노하며 사랑하는 여자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선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방식은 거칠고 행동은 서툴다. 주위에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왠지 매혹적이다. 그건 재준을 살아숨쉬게 한 배우 박성훈의 명연기 덕분이다. 

호흡과 얼굴 근육의 미세한 조절을 통해 찰나의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박성훈의 연기는 '더 글로리'의 남성 캐릭터들 중에서 눈에 띄게 매력적이다. 목을 졸라 연진을 공포로 몰아놓고는 "날 사랑하긴 했냐"는 예상 못할 고백으로 순식간에 공기를 끈적하게 바꾼다.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비뚤어지고 야성적인 남자의 순애보는, 목을 조르던 손이 두 뺨을 감싸는 사랑의 증거로 바뀌는 순간만큼 종잡을 수 없어 매혹적이다. 박성훈은 이러한 남자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섬세한 숨결을 불어넣어 뚜렷한 존재감을 남긴다.

'더 글로리' 박성훈, 사진제공=넷플릭스

핀 조명 아래서 연기를 시작했던 박성훈의 감춰졌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재준은 악질이던 '육룡이 나르샤' 길유와 사이코패스였던 '싸이코패스 다이어리' 서인우로 보여준 거친 기운의 뚜렷한 성장이기도 하다. 나쁜 느낌을 감싸는 표현 방식은 단순히 화를 내고 비열한 웃음을 짓던 영역에서 벗어나 깊이감 있게 세련돼졌고, 뜨겁거나 차가운 경계에만 걸쳐졌던 눈빛은 애틋함과 위태로움과 같은 더 많은 감정을 담게 됐다.

그래서 박성훈의 전재준은 김은숙 작가 작품의 클리셰로 통하던 남자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큰 반전 매력을 보여준다. 상처 입은 야수의 모습으로 일종의 야만스런 쾌감을 선사한다. '상속자들'의 영도(김우빈)가 묘하게 겹쳐지지만, 그와는 또 다르다. 영도의 배경(아버지의 폭행과 어머니의 부재)은 어딘가 연민할 여지를 쥐어줬지만, 재준은 도저히 감싸 줄 수 없는 근원 자체가 악질적인  존재다. 박성훈은 그런 존재를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배경으로 애처롭게 승화하며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캐릭터로 빚어냈다. 깊이감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감정선의 디테일로 박성훈은 '나쁜 XX'에게 마음을 주게 만들었다. 진짜 위험한 남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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