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경제에도 ‘빌드업’ 전략 절실하다
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선수 모두가 상대 압박 나서는
벤투 감독 전술로 월드컵 감동
공격과 수비 병행 역량이 핵심
단기 부양책으론 경제 못 살려
생산성 향상과 기술개발 필수
리더십과 팀워크 강해야 가능
새해 들어 벌써 열흘이지만 아직도 카타르월드컵 축구 16강 진출의 흥분이 남아 있는 듯하다. 유럽과 남미의 강호를 상대로 ‘빌드업 축구’를 보여준 대표팀은 우리 국민의 가슴을 벅차게 했다. 우리나라 축구는 월드컵 무대에만 나가면 ‘선(先)수비 후(後)역습’이란 소극적 전술을 고수하다 번번이 조별 리그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카타르월드컵은 달랐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빌드업’ 전술로 4년간 호흡을 맞춘 대표팀은 경기 내내 볼을 지키며 차근차근 공격을 전개해 강팀들을 뒤흔들었다. ‘우리도 이런 축구가 가능하구나’ 하는 자부심에 밤잠을 설친 월드컵이었다.
빌드업(Build-up)은 상대의 압박과 수비를 뚫고 차근차근 상대방 진영으로 나아가는 전술이다. 골키퍼부터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까지 점차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방 골문을 향해 나아간다. 빌드업 축구에 힘입어 한국의 평균 볼 점유율은 48.3%로 직전 월드컵대회(37.3%)보다 11%포인트나 높았다. 빌드업은 후방에서부터 시작되는 상대 팀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됐다. 현대 축구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최전방에서부터 공격수들이 상대 수비수들을 압박해, 수비진의 패스 정확도를 떨어뜨리고 실책을 유도해 공격 기회를 만들어낸다. 빌드업 축구는 수비에서부터 동료와 패스를 통해 상대 진영까지 정확하고 안전하게 넘어가 공격 기회를 만들기 때문에 압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카타르월드컵을 보면서 ‘우리 경제도 축구처럼 빌드업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던 6차례 가운데 5번이 심각한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Fed의 금리 인상은 예외 없이 8∼10개월의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를 추락시켰다. LG경영연구원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지난해(2.5%)보다 크게 떨어진 1.4%로 전망했다. 2021년에는 수출 호조와 기업 투자 증가가, 지난해에는 민간소비 회복이 어느 정도 경제성장률을 지탱했다. 하지만 올해는 수출과 대내 경제활동이 동시에 둔해지면서 경제성장의 버팀목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빌드업’하기 위한 긴 호흡의 경제정책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은 모든 생산요소를 투입해 물가 상승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고 이뤄낼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의미한다. 건강하고 이상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5% 안팎이었던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지금 2%로 내려앉았다.
현재와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30년에는 0.97%로 떨어지고, 2040년에는 0.6%까지 추락한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생산성이 낮아지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지 못한 가운데 저출산·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보다 잠재성장률 하락 폭이 큰 나라는 튀르키예(터키)와 칠레뿐이다. 단기적 부양책으로 수요만 늘리기보다는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장기적인 ‘빌드업 경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잠재성장률을 회복하려면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에 혁신과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밖에는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노동시장, 획일적 인재만 배출하는 낡은 교육 시스템, 그리고 창조형 선진 경제구조를 가로막는 촘촘한 정부 규제 등을 빌드업하듯이 하나하나 손질해 나가야 한다. ‘경제 빌드업’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지도력과 경제 부처 수장들 사이의 팀워크가 중요하다. 빌드업 축구가 선수 개개인의 체력뿐 아니라 멀티플레이어 능력, 즉 공격수가 수비도 하고, 수비수가 공격도 감행하는 팀워크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월드컵 개최 4년 전부터 수많은 비판과 주변의 염려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빌드업 축구 역량을 키워온 벤투 감독의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빌드업 축구’가 가능했듯이, 대통령이 인기와 지지도에 연연해하지 않고 ‘빌드업 경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강한 의지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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