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열린 성지 메디나, 알 발라드와 부활의 노래 [사우디 여행]
아라비아 신앙의 두 번째 본거지 메디나
非이슬람인에게도 개방 순례·여행 봇물
성지 면세혜택 쇼핑 필수...대추야자 인기
2000년 흥망성쇠 스토리 ‘제다 알발라드’
멋진 고택 가득...마을 전체가 세계유산
누가 걸어도 시간여행 드라마의 주인공
사우디아라비아 제2성지 메디나가 빗장을 풀었다. ‘웰니스의 메카’, ‘반도체의 메카’ 할 때 용어의 진원지 그 메카에서 메디나로 헤지라(622년)를 단행했던, 아라비아 신앙의 두 번째 본거지이다.
비(非)신도 여행자에게도 문이 열리고, 여성의 사회참여, 의상 등 규율도 완화한 요즘, 메디나에선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그들과 어울리고,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 곳곳에서 찾아온 무슬림 여성들은 나름의 색감과 패션으로 메디나 ‘예언자의 성원(聖園)’을 활보하고 있었다.
하라마인 성지순례 고속열차로 메디나에서 메카로 가는 길목, 사우디 제2도시 제다는 역사문화, 레저, 미식, 산업 등 다채로운 매력을 뽐냈다. 특히 옛도심 알발라드는 2000년 안팎 흥망성쇠의 스토리, 옛스러운 모습, 흥겨운 무형유산, 진귀한 물건, 인정 넘치는 손님 응대 모습을 보여주어, 알울라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최고의 여행지로 떠올랐다.
▶버킷리스트 여행=알울라를 떠난 차량은 기암괴석와 오아시스를 번갈아 지나치고, 오렌지 특급열차를 닮은 기차마을을 거쳐 3시간만에 메디나로 입성한다. 신자가 별로 없는 한국 여행자가 적었을 텐데, 메디나엔 한국브랜드 차량이 꽤 많이 보인다.
메디나의 랜드마크이자 핵심 성지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숨진 성원이다. 이곳 모든 건물, 조형물이 흰색·베이지색·살색 계열인데, 무함마드의 무덤(그린돔) 만 초록색으로 채색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휴대폰만 들면 출입을 허용하는 개방적 태도와 함께, 세계 각국 무슬림들이 저마다의 자유로움을 담은 형형색색의 복색으로, 놀러오듯 성지를 활보하는 모습에서 사우디 당국의 오픈마인드를 읽는다.
우리의 겨울철에 메디나로 온 사람들은 여행자 혹은 옴라(소규모 수시 순례)객들이다. 7월엔 대순례(하즈)가 있는데, 교구 단위별로 대규모 순례객들이 몰려온다.
예언자의 무덤 성원(聖園)에 몰려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 등지의 옴라객들에겐 버킷리스트에 담아두었던 여행이지, 의례 목적 만은 아닌 듯 하다.
여기에 온 것 만으로도 뭔가 이뤄낸 듯한 기쁨,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간절한 기도, 성지에 왔음을 자랑하는 SNS교신 풍경, 감격어린 눈물, 늙고 병든 자의 희망어린 갈구, 청소년 신도들의 재잘거림, 타올 같은 것 하나만을 달랑 걸친 수도자의 보람찬 표정이 교차했다.
▶성지 면세, 건강 성수 잠잠=쿠바모스크는 헤지라 단행 이후 처음으로 쿠바마을 오아시스에 세운 사원이다. 이곳에선 긴팔 옷과 긴 바지만 입어도 쉽게 출입토록 허용하고, 기도를 방해하지 않으면, 신도들의 풍경을 폰카로 촬영할 수 있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최근 이곳을 방문해 총수용인원 2만2000명에서 6만6000명으로 증축하겠다고 밝혔다. 비(非)무슬림도 이곳을 불편하지 않게 구경할수 있도록 여행자의 몫을 늘린 것이다.
쿠바 모스크 밖 야외 공원에선 일가족을 포함한 몇몇 일행들이 순례복장 이람(Ihram)을 걸친 채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기념촬영을 하거나, ‘나 잡아봐라’ 뜀박질을 하는 등 여느 가족, 친지 여행객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을 연출했다.
메디나는 성지 면세혜택으로 물건값이 싼 만큼 알누르몰 등 쇼핑센터에 반드시 들르고, 특산물인 아주아 대추야자와 메카에서 직송되는 성수 ‘잠잠’을 꼭 마시는 것이 좋다. 수자원 관리 능력을 가진 자가 정치적 종교적 주도권을 행사했던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문명의 전통 때문인지, 여전히 성지 메카의 성수 잠잠은 최고의 수원에서 최고의 추출과정을 거친다.
토속 농장 데이트 팜은 실개천이 농장 전체를 고루 적시도록, 치밀하게 계획된 수로로 흐르게 한뒤 대추야자 나무, 샤든(사슴 류), 닭 등을 길렀다. 적은 물로 녹지를 유지하는 지혜를 엿본다.
▶깊은 공감, 멋진 고택 제다 알발라드=메카엔 비(非) 신자가 갈 수 없으니, 우리는 메디나-제다-메카로 이어지는 하라마인 성지순례 고속열차를 타고 사우디 제2도시 제다로 향한다.
제다의 여러 매력 중 BC 6세기 촌락이 형성되고, AD 7세기 향신료, 금 등을 거래하는 홍해 중심의 유라시아 무역의 중심이 됐던 원도심 알발라드부터 탐방한다. 마을 전체가 세계유산인 이곳은 사우디 서부해안 히자즈(Hijaz) 문명의 발상지이자, 메카로 가는 관문(Makkah Gate)이 있는 곳이다.
산호석 벽돌로 지은 성벽과 함께 이 옛 도시의 대표 아이콘은 외벽 바깥으로 70~100cm 튀어나온 히자즈 스타일의 목재 발코니 ‘라와신’(Rawashin)이다. 납작한 나무막대를 창틀에 겹겹이 끼워 채광과 통풍이 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고 여러 방향으로 바깥을 살필수 있는 구조이다. 저마다 색다른 디자인으로 개성을 표출한다. 알발라드에 있지는 않지만, 타이밧 뮤지엄은 제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 건축물인 것 같다. 전통 하지즈 양식의 가옥에 흰 돔, 핑크돔이 지붕 곳곳에 있다.
누가 걸어가도 시간여행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골목들을 지나다 중심부에 이르면, 압둘 아지즈 왕의 행궁을 리모델링한 문화센터 ‘나시프 하우스’와 배가 마을 깊숙이 들어오던 때 상인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기도한 뒤, 진귀한 물건을 팔았던 마을 대표 모스크가 있다.
지구촌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소크 알 알라위’ 장터길로 가면, 길거리 음식, 보석, 공예, 의류, 카페트, 골동품, 향신료, 메주 닮은 발효식품 등 다양한 물건들이 지금도 거래되고, 시민과 여행자들이 보다 자유로워진 복색으로 활보한다.
▶침략군 묘지도 만든 인정=요충지였기에 끊임없는 외세의 침탈이 있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포르투갈 침략군 전사자들을 위해 묘지를 만들어주는 인정을 보인다. 이 기독교 묘지엔 이후 영국군 등도 묻히게 됐다. 인정은 인정이고 대포는 대포였다. 마을 어귀엔 지금도 홍해방향으로 옛 대포들을 두었다. ‘침략자 응징, 전쟁종식’의 강력한 메시지이다.
문화유산의 훼철 조짐이 보이자 왕실이 나서 복원 노력을 기울인지 50년 됐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 지역의 유산을 보존-복원하기 위해, 국고 외에 사재 170억원을 쾌척했다.
중세 히자즈(Hijaz) 생활문화 마트볼리 고택(Matbouli House) 뮤지엄에선 주인장 생활공간의 3배나 되는 손님용 공간을 마련해둔 제다 옛사람들의 인정을 볼수 있다. 한국인들에게 달려와 제다의 인심을 전한 동네 유지들의 표정도 착하다.
파란만장 제다의 별명은 겨울에도 핑크로즈가 피는 ‘홍해의 신부’이다. 우리처럼 국난극복이 취미이고 한국 불고기, 김치, 떡볶이도 잘 먹는 그들은 지금 먹거리, 해양레저를 즐기며 에메랄드 빛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메디나·제다=함영훈 기자
■한국 여행기자 첫 사우디탐방 글 순서 ▶2022년 12월21일자 [칼럼] 사우디의 재발견, 클릭 ‘새로고침’ ①사우디에 이런 면이? 진짜 우정, 여행교류는 ‘제3 중동붐’ ②정(情) 문화 ‘하파와’..8000㎞ 거리 韓-사우디 많이 닮았다 ③리야드, 제대로 즐기기, 블루바드·킹덤센터·옛도성 3색 매력 ▶12월27일 ④신비의 사우디 알울라..“어서와, 우리집은 처음이지?” ⑤사우디의 세계유산들..제다 알발라드, 최대 암각화군 ⑥함께 가는 韓-사우디, 왕세자·공주·원희·루디의 꿈 ▶2023년 1월3일 ⑦사우디 산호초 구경, 난파선 다이빙..홍해레저의 메카는? ⑧사우디 여성들 한국인 밝히자 “꺄르르, 와~” 우정 표현 ▶1월4일 ⑨사우디 최고 여행지, 제다 알발라드 정밀 탐방기 ⑩석유붐에 쇠락한 알발라드, 非무슬림 묘지의 애상 ⑪제다 고택 내부 3㎞ 쇼생크탈출로, 당황한 예비신부 ▶1월10일 ⑫빗장 푼 성지 메디나, 힐링 여행지 같은 활기 ⑬메디나 성지 면세, 건강 성수..근엄해도 명랑했다 ⑭‘홍해의 공주’ 제다, 볼거리·놀거리 팔방 미인 ⑮사우디 캅사·램, 침샘 자극, 치킨은 한국과 경쟁? ▶지면기사 인터넷판 〈2022년 12월27일자〉 ▷대자연이 감싼 알울라...오아시스 품은 문명을 만나다 ▷사막 도시에 꽃 피울 K-문화관광...확장·진화하는 한-사우디 교류 〈2023년 1월10일자〉 ▷빗장 열린 성지, 부활하는 히자즈 문명 ▷물위의 모스크-312m 분수-일품요리들...제다 가이어(제다는 다르다) ▶포토뉴스 사우디= 수시
abc@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여학생 나체 위에 음식 놓고 먹은 남고생들… 법원도 "16살 짓이라 믿기 어렵다"
- "쓰레기장이야 식당이야?"…치킨집 '충격' 위생상태
- “축의금으로 5000원짜리 세 장 넣은 십년지기, 실수냐 물으니…”
- ‘결혼지옥’ 3주만에 방송 재개…오은영 직접 언급은 없었다
- “아이유만 모델하란 법 있나” 400대1 경쟁률 만들어낸 우리은행
- “여자 셋, 술잔만 들면 대박” 넷플릭스 천하 또 흔들었다
- “55만원에 이걸 누가 사?” 삼성 잡겠다고 만든 ‘뚜껑시계’ 정체
- [영상]워게임으로 본 中 대만 침공은 실패…“승자도 없다”[나우, 어스]
- [영상] 골목길 ‘빵!’ 소리에 쓰러진 보행기 할머니…“운전자 과실 있나요”
- 1조 장착 카카오…버티던 ‘제왕’ 이수만에 거액 베팅, SM 결국 인수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