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소녀들이 ‘감히’ 꿈을 꿀 때

이서영 기자 2023. 1. 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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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터닝 포인트 2022]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3'이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변화의 파고를 넘어서: 디지털 세상과 세대교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촬영 장면 = (출처 NYT 터닝 포인트 2022)

(서울=뉴스1) 이서영 기자 = 터닝 포인트: ‘오징어게임’의 배우 이정재가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비영어 드라마로 에미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계 주연 배우라는 역사를 썼다. 나이지리아의 영화 제작자인 모아 아부두는 어린 시절 스크린에서 롤모델을 보지 못했고, 그것이 자신이 직접 미래 아프리카의 스토리텔링을 바꿔야겠다는 동기가 됐다는 것을 기억한다.

관객들의 취향이 변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TV쇼 기준으로 한국의 ‘오징어게임’, 프랑스의 ‘뤼팽(Lupin)’, 나이지리아의 ‘블러드 시스터즈(Blood Sisters)’ 등이 플랫폼에서 톱10에 들며 첫 주를 장식했다. 이를 통해 넷플릭스는 총 1100만 시간의 시청을 기록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서 제작된 콘텐츠에 대한 욕구는 할리우드의 지배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아울러 다양한 색깔을 지닌 독립 제작자들에게 보다 평등한 경쟁의 장을 만들어주고 있다. 글로벌 구독과 데이터 소비가 이제 미디어 세계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 주요 미디어 업체들은 ‘우리’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나는 1964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식민 시대의 문화적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지 4년이 되던 해다. 일곱살에는 가족들의 얼굴을 익히기 위해 라고스로 향했는데, 당시는 나이지리아에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이 혼재하던 시기였다.

불행하게도 가족 환경에 변화가 생긴 바람에 나는 곧 영국으로 복귀해야 했다. 영국의 젊은 흑인 소녀로서 롤모델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TV, 영화, 잡지를 다 뒤져도 마땅한 롤모델의 예가 눈에 띄지 않았다. 1960~1970년대의 흑인 배우들은 대부분 갱단의 일원, 마약상, 매춘부나 늙은 가정부, 또는 집사나 노예 같은 전형적인 역할로만 캐스팅이 되던 시기였다.

‘아프리카의 모처’를 배경으로 영상물을 찍을 경우 흑인들은 마을 사람이나 대사가 거의 없는 인물 등 한낱 배경 인물로만 취급됐다. 유년 시절 흑인은 매스컴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예외가 있다면, 영국의 유명한 흑인 기자 바버라 블레이크 한나와 트레버 맥도널드 경 정도였다.

나에게 처음으로 두근거림을 안겨준 텔레비전 쇼가 하나 있다. 그것은 뉴욕의 유명한 예술 고등학교에서 음악가, 배우, 댄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시리즈 ‘페임(Fame)’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흑인, 유대인, 히스패닉, 백인 캐릭터들이 인종이 아니라 오직 재능만으로 평가받았고, 출연진 역시 엄청나게 다양했다.

매주 TV에서 이 다채롭고도 멋진 사람들을 보면서 열여덟 살이던 나는 깊은 영감을 받았다.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용기가 생긴 것이었다. 이러한 나의 야망은 현실적인 어머니가 알게 되면서 끝장이 나고 말기는 했지만 말이다.

결국 1994년 나는 남편과 함께 나이지리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당시 나는 서른 살이었다. 당시 고향의 TV 프로그램 대부분은 영국과 미국에서 수입한 것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 감지됐다. 영화 제작사들은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국의 언어,유머, 관습, 믿음이 포함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 영화는 처음에는 VHS로, 그다음에는 DVD로 제작되면서 거의 모든 대륙으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의 TV와 신생 영화 산업은 발전 속도가 느렸다. 2006년 ‘모와 함께하는 순간(Moments with Mo)’이라는 아프리카 최초의 토크쇼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10년간 새로운 토크쇼 프로그램이 생겨나지는 않았다.

작가 모아 아부두 = (출처 NYT 터닝 포인트 2022)

문화적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감지한 나는 나만의 텔레비전 채널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꾸기시작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해 미디어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이미 진행 중인 혁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방법임을 깨달았다.

수년간의 투쟁과 노력, 그리고 나의 비전을 믿어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모여 2013년 ‘에보니라이프 TV’가 아프리카 전역에 방송되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나이지리아의 박스 오피스 사상 가장 큰 수익을 올린 3편의 영화 중 하나인 ‘피프티(Fifty)’가 상영되면서 에보니라이프 영화사도 탄생했다.

이후 5년간 7개의 영화가 흥행 기록을 냈으며, 우리는 다시 도약할 준비가 됐다. 이번에는 전 세계사람들에게 우리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빠른 성장 덕분이었다.

특히 코로나19의 확산은 수많은 사람이 한때 간과될 수도 있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 새로운 문화 구조에서 시청자들은 기존 TV에서라면 13주 동안 계속 봐야 했던프로그램을 하루 주말 저녁이면 한 번에 모두 소화할 수 있게 됐다.

2021년 우리는 소니 픽처스 텔레비전, AMC, 라이온스게이트, BBC 스튜디오, 윌 패커 프로덕션, 제이다 핑켓 스미스와 윌 스미스의 웨스트브룩 스튜디오 등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튜디오들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17세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은징가 여왕(Queen Nzinga)’부터 오늘날의 예술품 절도단을 그린 ‘리클레임(Reclaim)’,SF 스릴러 ‘나이지리아 2099(Nigeria 2099)’ 등의 프로그램 제작은 아프리카 독립영화사로서는전례 없는 일이다.

풍경은 분명히 바뀌었다. 18세기 서아프리카 다호메이 왕국(베닝 공화국의 옛 명칭)의 왕의 경호를 맡았던 1,000명의 다호메이족 여성 전사들의이야기를 상상해 보라. 2014년 나는 이 이야기를영화로 상영하고자 스토리 구매에 나섰지만, 이를 받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2018년 마블의 ‘블랙 팬서(BlackPanther)’는 전 세계를 강타했고, 현실의 다호메이 전사들을 기반으로 한 가공할 여성 군대인 도라 밀라제(Dora Milaje)가 소개됐다. 2022년 9월 비올라 데이비스가 주연한 ‘더 우먼 킹(TheWoman King)’도 이 놀라운 역사인 다호메이 전사들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줬다. 그리고 소니 픽처스와 에보니라이프 스튜디오의 협력에 힘입어 이 전설적인 여성들에 대한 TV 시리즈 다호메이전사들(The Dahomey Warriors)이 조만간 방영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와 TV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의 K팝처럼 나이지리아의 아프로비츠(Afrobeats)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완전히새로운 세계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에 위즈키드, 다비도, 버나 보이 같은 나이지리아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런던의 O2 아레나와 로열 앨버트 홀 같은 주요 공연장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표를 매진시킨다.

형세가 이미 역전됐다. 이를 거스를 수는 없다. 영화에서든 노래에서든, 스토리텔링은 영원히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이 모든 발전에도 ‘토크니즘(진정성 없는 구색 갖추기 행정이나 행위)’은 늘 존재한다.

이를테면, 일부 스튜디오는 자신들이 단지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다는 노력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다양성’을 이용한다. 다행히도, ‘블랙 팬서’가 했던 방식처럼 패러다임을 깨뜨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나는 이 변화의 물결이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자존감이 위협받는 환경에서 자라나는 흑인 소녀들의 정신에 양분을 주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꿈에 기름을 부어주기를 바란다. 이들이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을 보기를 바란다. 선택할 권리, 싸울 권리,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꿈을 가지고 말이다.

우리가 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할 때까지 나는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장벽을 무너뜨릴 것이다. 이는모든 어린 소녀가 마땅히 받아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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