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신인 김승현, 리그를 뒤집어놓다
‘역대급 드래프트가 될 수도 있었던 해’ 2001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대한 이후의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드래프트에서는 특출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 여럿나왔다. 양적으로는 살짝 아쉬움이 남지만 이른바 ‘빅3’에서 만큼은 무게감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김주성과 함께 무적 중앙대 '트윈타워'의 한축으로 명성을 떨친 ‘믿을맨’ 송영진(44‧198cm), 폭발적인 공격력을 겸비한 왼손잡이 듀얼가드 ‘마징가’ 전형수(44‧180cm) 그리고 대학무대에서 천재 포인트가드로 명성을 날리며 팀에 따라서는 전체 1순위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매직 핸드’ 김승현(44‧175cm)까지…, 셋 모두 한 팀의 전력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확실한 대어급들이었다.
송영진은 큰 신장에도 불구하고 운동능력과 기동력은 물론 빼어난 슈팅력까지 겸비해 대학 최고의 파워포워드로 꼽혔다. 당시 중앙대에는 임재현, 황진원, 신동한, 조우현 등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지만 압도적으로 대학무대를 휩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골밑에서 버티고있던 김주성-송영진의 영향이 컸다.
이전 중앙대 전성시절 한기범과 '쌍돛대'로 불렸던 김유택은 '농구人터뷰'와의 인터뷰 당시 "한기범과 함께 하던 시절 호흡도 잘 맞았고 시너지 또한 많이 났다. 때문에 동료들에게 앞선에서 무리해서 수비하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포스트 인근으로 들어오면 다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들의 뒤를 이은 후배 송영진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당시 다양한 앞선수비 전략 중 상대를 포스트로 몰아넣는 방식도 있었다. 들어왔다싶은 순간 찍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주성이나 나나 둘다 빠르고 탄력이 좋았던지라 돌파나 골밑공격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포지션을 떠나 어지간한 선수와 맞서도 스피드로 뒤지지 않았고 공중에 뜬 상대에게는 여지없이 블록슛 세례를 퍼부었다”는 말로 대학시절 강력했던 모습을 회상하는 모습이었다.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당시 전체 1순위 영광은 송영진에게도 돌아갔다. 전형수, 김승현도 충분히 1순위를 노려볼만한 선수였지만 예나 지금이나 농구는 높이 싸움이다. 아예 레벨자체에서 차이가 나면 모를까 특급 빅맨과 특급 가드가 나오면 아무래도 빅맨 쪽을 선호하는 구단이 많다. 당시 상황도 그랬다. 이전 시즌 삼성이 이규섭을 뽑고 높이가 보강되면서 우승까지 차지하자 주전급 빅맨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져가던 분위기였다.
이후의 지명 순위에 대해서는 김승현-전형수 순으로 갈 것이다는 예상이 많았다. 1번 역할은 물론 2번에서 에이스 역할도 가능한 전형수도 충분히 좋은 선수였지만 김승현은 농구인들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로 눈도장을 찍어가고있던 상황이었다. 안정감에서는 전형수가 더 좋아보인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터지면 대박이다’는 말처럼 고점에서의 김승현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과적으로 골드뱅크에서는 전형수를 2순위로 지명했다. 예상밖 선택에 팬들 사이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3순위 지명권을 가진 대구 동양 오리온스 김진 감독마저 어안이 벙벙했다고 밝힌바있다. 김 전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1순위가 나와도 김승현을 지명하고 싶을만큼 개인적으로 탐내고 있었던 상황에서 3순위 지명권을 받게되는 순간 솔직히 기대 자체를 안했다. 우리차례까지 올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골드뱅크가 김승현을 거르자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기뻤다. 이것은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체중과의 전쟁’ 송영진, 10㎏에 묻혀버렸던 재능
1순위로 송영진을 데려간 LG는 단숨에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전 시즌 외곽슛과 빠른 농구를 통해 리그 최고의 공격팀으로 화제를 모았던 상황에서 주전급 토종 빅맨이 추가됐다는 것은 완전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포인트가드 포지션도 아쉽기는했으나 팀 자체적으로 전술을 통해 상당 부분 커버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에이스 조성원이 단신인 관계로 보통의 1번을 쓰게된다면 앞선의 높이 자체가 너무 낮아진다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김태환 감독은 송영진이라는 보석을 잘못 쓰고 말았다. 골밑에서 묵직하게 활약해주던 타팀 토종 빅맨이 부러웠던 것일까? 김감독은 송영진을 외국인선수와도 몸싸움이 가능한 파워플레이어로 활용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상당수 언론에서도 우려를 표했다시피 이는 성공 가능성 낮은 도박성 승부수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였던 것은 과정이다.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송영진은 몸에 살이 잘 붙지않는 체질이라고 한다. 무엇인가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성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팀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몸을 키워서 파워업을 시키려 했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과정에서 1번으로 선택된 방법이 ‘많이 먹고 살찌우기’였다. 지금의 관점에서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송영진 역시 당시에 대해 “그냥 먹고 먹고 또 먹고 일단 살부터 찌우자는 것이 1차 미션이었다. 밤에 야식은 기본이고 하루에 여섯끼를 먹었다. 운동하다가도 중간에 먹고 오고 그랬을 정도다. 먹는게 전혀 즐겁지 않았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스트레스도 받았다”라고 밝혔다.
대학시절 송영진의 경쟁력은 신장대비 빼어난 운동신경과 기동력이었다. 그만한 장신이 날렵하게 코트를 휘젓고 다니는 것 만으로도 상대팀은 공수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LG는 그러한 훌륭한 장점을 가진 선수에게서 갑옷을 벗겨내고 칼까지 빼앗아 버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말았다. 무턱대고 살을 찌우는데 집중하다보니 신체밸런스가 깨졌고 본래의 장점까지 살릴 수 없게 된 것이다.
10㎏이상 찌웠지만 말 그대로 다른 부분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몸무게만 늘어나버렸다.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김감독은 송영진의 대학시절 은사였다는 점이다. 이전부터 송영진을 직접 써봤고 장단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 임에도 패착에 가까운 악수를 두며 구단의 차기 프랜차이즈스타가 될 수도 있었던 선수의 날개를 꺾어버렸다.
물론 송영진이 안좋은 상태에서 머물며 그저그런 선수로 커리어를 마감했다면 구단과 김감독에 더해 본인에 대해서도 지적의 목소리가 많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송영진은 반등에 성공했다. KT에 보상선수로 보내진 것은 1순위 출신 선수 입장에서는 치욕에 가까웠지만 절치부심한 끝에 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키플레이어로 거듭난다.
KT에서 그와 함께했던 추일승, 전창진 감독 등은 구태여 송영진을 크게 바꾸려 하지 않았다. 대학시절부터 볼없는 움직임과 수비 등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지라 본인이 잘하는 플레이를 살려주려고 했다. 그 결과 송영진은 수비 등 궂은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시작했고 2015년까지 선수생활을 가져가며 롱런에도 성공한다. 맞지않는 옷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지 잘 알게 해준 사례였다.
◆ 송영진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606경기 출전 평균 7.39득점, 2.48리바운드, 1.16어시스트, 0.74스틸
트레이드에 밸런스가 깨져버린 왼손 에이스 전형수
나란히 2, 3순위로 뽑혔지만 전형수와 김승현의 프로에서의 활약상 차이는 컸다. 냉정히 말하자면 전형수는 2순위치고 아쉬운 축에 속하고 김승현은 역대 최고의 3번픽 중 하나다. 그런만큼 ‘당시 골드뱅크가 김승현을 택했다면 어떤 결과가 이어졌을까?’에 대한 궁금증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동양의 첫우승은 미뤄졌을 것이 분명하며 골드뱅크는 더 높은 순위에 올라갔을 공산이 크다.
어쨌거나 당시에는 ‘김승현이 아쉽기는 하지만 전혀 이해못할 픽은 아니다’는게 전형수를 뽑고난 후의 반응이었다. 골드뱅크 역시 ‘팀에 득점할 선수가 많지않아 이 부분에서 기여할 수 있는 전형수가 필요했다’는 말로 지명이유를 밝혔다. 전형수는 슈팅가드까지 소화가능할 정도의 득점력을 가진 듀얼가드였으니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다.
실제로 전형수는 첫시즌 준수한 기량을 펼쳐보이며 팀내에서 주전급으로 자리를 굳힌다. 빠르고 슛이 좋아 돌파와 3점슛에 모두 강점을 보였는데 거기에 더해 2대2 게임과 45도 각도에서던지는 뱅크슛 또한 일품이었다. 왼손잡이로서의 희소성도 있었다. 김승현이 잘해도 너무 잘해버린 것이 문제였을 뿐 전형수도 제몫을 해줬다.
장기적인 입장에서보면 전형수는 김승현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명된 팀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다는 사실이었다. 전형수는 골드뱅크에서의 생활에 만족해했다. 다른 팀에 비해 환경은 좋지 못했으나 선수들간 분위기는 무척 돈독했다. 그렇게 잘 적응하면서 성장하려는 찰나 재정난을 겪던 팀에서 그를 현금트레이드하고 만다.
당시 전형수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고 골드뱅크 팬들 역시 새로운 간판 스타를 잃어버리게 된 안타까운 현실에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전형수는 저니맨이라는 얘기가 나올정도로 팀을 자주 옮겨다니게 되는데 여기에는 데뷔 팀에서 원하지않은 트레이드를 당한 영향도 컸다는 분석이다. 만약 골드뱅크가 재정이 좋은 팀이었고 전형수가 안정적으로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면 구단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 전형수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46경기 출전 평균 7.32득점, 1.69리바운드, 3.33어시스트, 0.61스틸
모두를 조연으로…, 매직 핸드의 놀라웠던 데뷔 시즌
‘나빼고 모두 조연!’ 적어도 당시 김승현이 그렇게 외쳤어도 모두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조연이라 함은 신인드래프트 동기들 포함 모든 토종 선수들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이다. 그만큼 그의 데뷔 시즌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비주류 동국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다소 과소평가를 했던 이들까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개인기록, 팀 성적에서 완벽한 업적을 달성했다.
치욕적인 32연패 포함 수 년 동안 하위권에 처져 있던 오리온스는 슈퍼 루키의 등장과 함께 완전히 바뀌었다. 김승현,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 트리오를 중심으로한 화끈한 런앤건 농구를 통해 순식간에 KBL의 강호이자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올라섰다. 김승현은 데뷔 시즌 신인왕과 정규시즌 MVP를 동시에 석권하는 괴력을 발휘한 것을 비롯 베스트5, 어시스트상, 스틸상까지 쓸어담으며 전무후무한 데뷔 시즌 5관왕을 달성한다.
거기에 더해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결승전에서 강호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패색이 짙던 경기 막판 결정적인 스틸에 이은 득점 등으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연장전 대역전극까지 지휘했다. 그 모든 것이 1년여 사이에 벌어진 것으로 임팩트만 따진다면 지금까지도 비교할 선수가 없을 정도다.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김승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비적인 부분에서 제몫을 해준 부분이 크다. 보통 170cm대 단신 선수는 공격은 몰라도 수비에서 어려움을 겪게되는 경우가 잦다. 상대팀의 집요한 미스매치 공략의 타겟이 되기도 한다. 김승현은 달랐다. 키만 작았을 뿐 수비시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발이 매우 빠를 뿐 아니라 웨이트도 탄탄해서 자신보다 큰 선수들이 몸싸움을 걸거나 포스트업을 쳐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거기에 끊임없이 스틸을 시도하는지라 대부분 선수들은 김승현 옆에서 드리블을 오래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이렇듯 신인 시절부터 KBL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던 그이지만 꾸준함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고질적인 허리부상에 더해 이면계약서 논란이라는 파문이 터졌고 그로인해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은 물론 KBL측으로부터 중징계까지 받게된다. 이후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어 부활을 꿈꿨으나 한창때 실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먹튀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된다.
◆ 김승현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70경기 출전 평균 10.5득점, 3.03리바운드, 6.9어시스트, 1.95스틸
쓰임새 많았던 저니맨에 허슬 플레이어까지…
1~3번픽의 존재감이 컸던 탓일까. 2001드래프트에서 지명되었던 선수들은 그 외 기타 순번에서는 상당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나마 황진원(44‧188cm)이 슈팅가드로서 정석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며 5순위의 자존심을 지켰다. 비록 여러팀을 오가기는 했으나 전형수가 트레이드되어 떠난 코리아텐더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2002~03 시즌 첫 4강 진출을 이끄는 등 전성기를 보내기도 했다.
내외곽을 넘나들며 득점을 올릴 수 있고 보조리딩에도 능한데다 수비 5걸에도 2번이나 뽑혔을만큼 수비력도 좋았다.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으나 어느 한쪽에서 확실한 부분이 없던 관계로 어정쩡하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바로 이런 부분이 저니맨이 된 이유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현준(43‧194cm)은 주로 식스맨으로 커리어를 보냈다. 황진원이 그랬듯 두루두루 다양한 역할이 가능해서 감독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특히 KCC에서 신선우 감독이 토털 바스켓볼을 밀고있을 당시에는 포워드이면서도 포인트가드로 자주 출장할 정도로 멀티플레이를 보여줬다.
◆ 이현준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85경기 출전 평균 2.46득점, 1.18리바운드, 0.78어시스트, 0.44스틸
◆ 황진원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593경기 출전 평균 8.48득점, 2리바운드, 2.48어시스트, 0.97스틸
◆ 김진호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172경기 출전 평균 2.04득점, 0.82리바운드, 0.95어시스트, 0.52스틸
◆ 이형주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86경기 출전 평균 1.91득점, 0.53리바운드, 0.48어시스트, 0.23스틸
◆ 신동한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273경기 출전 평균 3.37득점, 0.66리바운드, 0.37어시스트, 0.4스틸
◆ 김종학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07경기 출전 평균 2.45득점, 1.2리바운드, 0.35어시스트, 0.28스틸
◆ 허중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6경기 출전 평균 0.19득점, 0.39리바운드, 0.22어시스트, 0.22스틸
최민규(44‧180cm)같은 경우 잘 알려진 선수는 아니지만 알짜 식스맨으로 통했다. 짧은 시간을 뛰어도 최선을 다해 허슬플레이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승현과 동국대 동기여서 그랬을까. 유달리 김승현 수비에 자신감을 보여서 전담 마크맨으로도 종종 나왔는데 실제로 상당히 잘 막았다. 거기에 더해 KCC소속으로 챔피언결정전에 나가서는 TG삼보와의 7차전에서 자신보다 25cm가 큰 김주성을 집중수비하면서 멘탈을 흔들어버리는 등 우승에 공헌하기도했다.
◆ 최민규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271경기 출전 평균 2.57득점, 0.93리바운드, 0.97어시스트, 0.34스틸
현역 시절부터 KT에서 좋은 기억이 많았던 송영진은 부산 KT, 연세대, 휘문고 코치를 거쳐 현재 수원 KT 코치로 복귀했다. 성실하고 묵묵한 성향 탓에 이곳저곳에서 꾸준하게 러브콜을 받는지라 은퇴후 공백기가 거의 없었다. 전형수는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코치, 감독대행 등 여자농구계와 인연을 쌓았다가 현재는 명지고 코치로 재직중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영향인지 김승현은 지도자의 길은 걷지않고 있다. 은퇴 후 해설위원, 각종 예능출연 등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잠깐 농구교실 등에서 강사로 있기는했으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선수 시절에도 그랬지만 은퇴 후에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사기죄 혐의피소 등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있다.
그 외…, 이현준은 SK 코치, 성준모는 현대모비스 전력분석팀장, 신동한은 KBL 심판으로 활약중이며 김종학은 유소년 농구클럽 운영, 최민규는 농구교실과 족발집 운영, 황진원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이미지편집_김종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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