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벽? 예비 초등생의 수학 레벨 테스트 경험해보니...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우리 아이는 수 놀이에 관심이 많다. 아직 정확한 계산은 하지 못하더라도 시간, 금액, 나이 등등 수로 바꾸어 말할 수 있는 분야에 높은 흥미를 보인다. 학교에 가기 전, 예비 1학년 아이에게 필요한 정도의 덧셈이나 뺄셈 식은 나와 함께 가정에서 조금씩 풀어본 정도이고 퍼즐 맞추기나 블록 만들기를 좋아해 따로 도형에 관한 문제집은 풀지 않았다. 아직 미취학 아동인 아이에게 행여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지식은 기억에도 오래 남을 뿐 아니라 아이의 정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또래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놀이로 차분히 학교 갈 준비를 해 나가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가 수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연산 실력도 점점 더해가니 욕심이 생겼다. 주위의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요즘은 수학도 서술식으로 답변을 써야 해서 미리부터 문제 푸는 연습을 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사고력 수학'이라고 불리는 응용 분야는 전문 학원을 필수 사교육인 듯 보였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학원들은 입학 전부터 자리가 없어 대기를 걸기도 한다 하니 나도 없던 조바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만 너무 안일하게 집에서 가르칠 수 있다고 믿은 건 아닌지, 유치원에 다닐 때와 학교에 다니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데 아이의 재능을 어떤 방식이든 어서 키워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만 늘어갔다.
그러던 차에 마침 동네에 새로 오픈한 수학 학원에 설명회가 있어 참석하게 되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부모 설명회였지만 그들의 플랜에 의하면 지금부터 시작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대학 입시까지 연결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원에서 가르치는 학업 수준에 다시 한번 놀랐다. 과연 우리 아이가 적응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인지 의문이 갔다.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들만 뽑아서 만들어진 시스템 대로 소위 영재에 가까운 학생만 육성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기초부터 배우고 싶은 일반 아이들이 들어갈 곳이 있는 것인지 놀랄 만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설명회가 끝날 무렵, 학원에서는 선심을 쓰듯 무료로 레벨 테스트에 응할 기회를 준다고 말했다. 나는 사실 레벨 테스트에도 따로 비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처음 알게 된, 무지한 엄마였던 것이다. 서둘러 테스트 신청을 하고 나온 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닐까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더는 늦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이를 설득해 테스트를 보기로 결정하였다.
난생처음 전문 기관에서 시험 아닌 시험을 보는 아이의 태도는 가관이었다. 처음 보는 선생님을 따라 낯선 교실로 이동한 아이는 수시로 엄마가 밖에 있는지 확인했고, 그럴 때마다 아이의 진중하지 못함을 탓하며 내 마음도 타 들어갔다. 그동안 이런 시험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연습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도 몰려왔다. 일부 기다리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특정 학원의 테스트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학습 정보들도 넘쳐 난다고 했다. 나에게는 정말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이윽고 한 시간이 넘는 테스트가 끝나자, 선생님이 학부모를 차례로 한 명씩 불러 결과를 보여주며 상담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본인이 풀 줄 아는 몇 가지의 연산을 제외하고, 처음 보는 도형 문제나 긴 문장으로 된 응용문제에는 온통 낙서를 해 두었다. 번호가 적힌 란에 표기를 해야 한다는 방법조차 모르는 아이였다. 어떤 문제에는 보기로 나온 도형을 마치 정밀화처럼 세세하게 따라 그린,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있었다. 앞에 있는 선생님을 마주 보기가 부끄러웠지만 나는 띄엄띄엄 테스트 결과와 관계없이 가장 기초부터 배울 수 있는 반에서 이제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내 의견을 전달했다. 학원에서는 기초 이상 레벨이 되어야 반을 편성할 수 있다고 했고, 인원에 따라 새 학기에는 기초반을 만들 계획도 있으니 대기 명단을 작성하고 가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
긴 시간 처음 보는 문제와 씨름하느라 배가 고파진 아이는, 학원에서 나오자마자 천진난만하게 간식을 먹었다. 그러더니 그곳은 무엇을 배우는 곳이냐고, 자신이 학교에 가면 저기에 꼭 가야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사실 나도 그게 물음표였다. 내가 아이에게 진정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원하는 목표가 유명 학원의 심화반인 것일까? 그 와중에 레벨 테스트 결과를 대학 합격증처럼 들고 좋아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마 아이가 학원에 다니게 된다면 이미 실력이 갖춰진 친구들과 경쟁하느라 더욱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 아이는 등록도, 대기도 하지 않았다. 들어가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첫걸음에 상처만 받고 돌아온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은 무엇보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공교육이 정한 기준을, 이미 많은 사교육에서 훌쩍 넘어 가르치고 있고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 또한 현실이겠지만 아직은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테스트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다시 한번 놀랐던 사건이었다. 어떤 드라마에 나왔던 명대사도 있지 않은가! '아이들은 더 놀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정말 아이들이 마음껏 놀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일까? 아직도 작기만 한 아이의 손과 발이 유독 더 안쓰러운 하루였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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