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귀족 하인리히 13세, 그는 왜 쿠데타를 꿈꿨나
극우 ‘제국의 시민’ 25명 체포
‘1871년 독일제국’ 추앙하며
서독·통일독일의 정당성 부정
코로나 백신 거부 계기 세 키워
지난달 7일(현지시각) 적발된 국가 전복 모의 사건은 독일 국내외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독일 당국은 경찰 등 수사요원 3천명을 동원해 전체 16개주 가운데 11개주 130여 곳에서 대대적인 검거·수색을 벌여, 이른바 ‘제국의 시민’(Reichsbűrger) 운동의 극우 활동가 25명을 쿠데타 모의 혐의로 체포했다.
독일 당국은 이들이 베를린의 연방의회 공격을 포함한 정부 전복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은 수색 과정에서 40만유로(약 5억3천만원)가 넘는 현금과 600만유로(80억원)어치의 금괴를 찾아냈고, 총·칼·석궁 등 무기도 90점 이상 압수했다. 사건은 당국의 발 빠른 조처로 수습된 모양새다. 독일 정부는 총기 소유 규제를 강화하고 극단주의자를 공직에서 쉽게 해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후속 대책 마련에도 나섰다.
그럼에도 의문이 남는다. 독일 하면 유럽에서도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안정된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쿠데타 모의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1871년 독일제국의 시민”
이번 쿠데타 모의를 주도했던 ‘제국의 시민’은 하나의 단체라기보다 몇몇 작은 단체들과 개인을 아우른 지칭이다. 이들은 조금씩 다른 지향을 갖고 있지만, 현재의 독일 이른바 1949년 서독에서 설립되어 1989~1990년 동독을 흡수통일한 ‘독일연방공화국’의 법적 정당성을 부정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현 독일연방공화국은 독립국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영국·프랑스의 위임 관리 기구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대신 1871년 비스마르크 시절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승전 이후 ‘독일제국’이란 이름으로 지속해온 국가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존속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제국의 시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들은 현 독일 국가기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들만의 영토를 만들어 “독일 왕국”, “제2독일제국”, “자유 프로이센 왕국” 등과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단체도 있고, 또 여권·운전면허증 등 독일 정부가 발행하는 문서를 거부하고 대신 스스로 만들어 발급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체로 공격적 민족주의 성향을 띠며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과 반유대 성향도 보인다. 독일에선 이들의 수가 지난해 12월 기준 2만3천명에 이르며, 그중 5%가 극우 성향이고 또 10%는 폭력을 꺼리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논거를 강화하기 위해 1973년 7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끌어들인다. 독일 헌재는 당시 동·서독 기본조약에 대한 위헌제청 심판에서 “(독일) 기본법은 독일제국이 1945년 붕괴하지 않고 살아남았고, 항복에 의해서도, 연합국의 점령 세력에 의한 주권 행사에 의해서도 멸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다만 국가 전체로서는 기관들, 특히 조직을 구성하는 통치 기관들이 없어서 스스로 행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 부분을 강조하며 독일제국의 존속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는 ‘제 논에 물대기’ 식 해석이라는 반론이 많다. 당시 헌재는 독일제국의 연속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독일연방공화국의 성립으로 하나의 새로운 서독 국가가 건립된 것이 아니라, 독일의 한 부분이 새로이 조직된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연방공화국은 독일제국의 ‘법적 승계자’가 아니라, ‘독일제국’과 동일한 국가”라고 현 독일의 정통성과 합법성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점에는 눈 감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독일은 1989년 동·서독과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영국·프랑스·옛 소련 등 4개국이 참여하는 이른바 ‘2+4 조약’으로 통일을 마무리함에 따라 법적인 완결성을 더 충실히 갖추게 됐다. 당시 이 조약으로 이들 점령국 네 나라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통일 독일의 완전한 주권을 인정했다.
코로나19 시위 거치며 더욱 극단화해
제국의 시민 운동은 비교적 최근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2012년 11월 의회에서 독일의 ‘좌파당’이 제국의 시민 지지자 규모를 물었을 때 정부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당시 제국의 시민 지지자들은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 ‘괴짜들’의 모임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현황 파악도 이뤄지지 않았다.
제국의 시민 운동은 2016년 한 지지자가 집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에게 총을 쏘아 경찰 한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독일 당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제국의 시민 지지자들의 총기 소유 허가 1천여건을 취소하는 등 단속에 나섰지만, 여전히 500명 정도가 합법적인 총기 허가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최근 몇년 새 독일 곳곳에서 벌어졌던 코로나19 방역 및 백신 반대 시위를 계기로 세력을 늘리고, 또 좀 더 조직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으로 변모했다. 독일 튀링겐주의 정보담당 책임자인 슈테판 크라머는 “독일의 뉴라이트와 네오나치는 평소 제국의 시민 운동을 ‘괴짜’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위에 함께 나서며 서로 힘을 모으면서 새로운 지지 세력을 끌어들이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들은 2020년 8월 말 코로나19 항의 시위 때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에 진입을 시도하는 등 여러 차례 결집된 힘을 과시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제국의 시민 일부 세력은 지난해 4월 ‘애국주의자 연합’이라는 단체에 합류해 카를 라우터바흐 보건장관을 납치하려는 폭력성까지 보였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 국제반테러센터(ICCT)의 에비안 레이디그는 “극단주의 세력이 전세계적으로 점점 서로 소통을 넓혀가고 있다. 반정부 세력과 우익 극단주의가 결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에 적발된 쿠데타 모의에서는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출신 전직 의원, 특수부대의 전·현직 장병 등 정치와 군사 경험이 풍부한 인사들이 합류하는 등 훨씬 조직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2021년 11월부터 쿠데타 모의에 들어가, 군과 경찰 경력자들 모집에 나섰으며, 지난여름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4차례 회합도 했다. 이들은 쿠데타 성공 이후 정부 구성 문제까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은 쿠데타가 성공할 경우 국가 지도자로 내정된 하인리히 13세(71)다. 그는 한때 옛 동독 지역에 속하는 튀링겐주 지역을 지배하던 봉건 제후 로이스 집안의 후손이다. 로이스 집안 남자들은 12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하인리히 6세 이래로 모두 하인리히로 불리며, 그들 사이에는 이름 뒤 숫자로만 구분된다. 그는 러시아 출신 여자친구를 통해 러시아와 접촉해 쿠데타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베를린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테러 단체나 기타 불법 단체 대표와 접촉을 유지하지 않았다”고 연관성을 부인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부동산업을 해온 하인리히 13세는 오래전부터 음모론에 심취해 있었으며, 201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월드웹 포럼에서는 과거 독일제국 시절의 군주와 왕실을 예찬하는 발언을 한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그는 자신의 가문이 부당하게 폐위됐다며 유대계 금융인들이 군주제를 무너뜨린 배후라는 반유대 음모론도 내비쳤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된 뒤엔 옛 동독에 있던 몰수된 집안의 재산을 되찾기 위해 법정 공방을 벌였으나 패소했다. 그 뒤 옛 집안의 영지였던 튀링겐주의 작은 마을 바트로벤슈타인에 있는 작은 별장을 샀고, 지난해 여름엔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로이스 공국의 시민으로 등록하라’고 촉구하는 우편물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로이스 집안과는 절연 상태라고 한다. 그의 먼 친척인 하인리히 14세는 하인리히 13세를 “정신 나간 늙은이”라며 “그는 몇년 전 요상한 음모론과 반유대론 때문에 가문에서 추방됐다. 이제 그는 로이스 집안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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