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적 사실주의에 작별을 고하다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3'이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변화의 파고를 넘어서: 디지털 세상과 세대교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한때 나는 사람들이 '마술적 사실주의가 아닌 '고딕 소설(공포와 로맨스의 요소가 결합된 소설 장르)'로 분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여섯 번째 소설의 제목을 『멕시칸 고딕』이라고 선택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내 경력을 통틀어 나는 내가 쓴 모든 것에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한번은 누군가가 내 작품을 '공상과학(SF)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불렀는데, 이 용어는 아직까지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한때 약 60년 전 작품을 저술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 그룹의 문학 스타일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됐다. 그러나 영어권에서 이 용어는 라틴 아메리카식 글쓰기와 같은 말이 됐다. 영국 작가들의 모든 작품이 '오스테네스크(Austenesque)'라고 불리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참고:오스 테네스크는 제인 오스틴에서 비롯된 용어다). 나는 이 광대한 라벨 붙이기(라틴 아메리카식 글쓰기를 마술적 사실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책으로 수상한 경력이 있는 마리아나 엔리케스와 몇 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모든 라틴 아메리카식 글쓰기를 마술적 사실주의로 부르는 것은 우리의 작품을 할아버지의 문학과 연결하고 시공간의 차이를 없애고 하나의 두루뭉술한 범주에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우리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중요할까? 장미에 어떤 다른 이름을 붙이더라도 여전히 아름답지 않겠는가? 내 경험에 의하면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것은 기대치를 만들기 때문에 중요하다. 어떤 작품이 마술적 사실주의로 묘사될 때, 그 작품은 전형적으로 가브리엘 그라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슬럼가에 거주하고 실종자들의 환영을 보는 여자를 주제로 한 아르헨티나 소설가 돌로레스 레예스의 책 『어스이터(Eartheater)』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할 것이다. 나는 또한 편집자들이 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기 드문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장르 작가가 점점 더 고딕과 서스펜스 시대에 몰입하고 있다.
이것이 모두가 마술적 사실주의로 글 쓰는 것을 중단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장르는 미국이나 영국에 거주하는 2, 3세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 사이에서 새 생명을 얻은 것 같다. 그러나 심지어 거기에서도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라벨이 그 라벨로 묶일 수 없는 V. 카스트로와 가비노 이글레시아스와 같은 새롭게 등장하는 공포 소설 작가들의 노력을 미묘하게 지우는 것을 느낀다.
나의 과묵함은 단순히 철학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실용적인 측면도 있다. 출판 업계에서 사용되는 '비교 제목(comps)'을 생각해 보라. 비교 제목은 작성 중인 원고와 유사한 출간된 책이다. 이는 출판업계의 약칭이며, 편집자가 이 책에 대한 작업에 들어갈지 인수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멕시칸 고딕』이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 나는 라틴 아메리카의 공포물 비교 제목이 부족하다고 믿었다. 이러한 부족함 때문에 작가가 그 장르를 다루는 소설책 거래를 성사시키기가 더욱 어려웠을 수도 있다. 『멕시칸 고딕』이라는 이름을 붙인 고딕 및 공포 소설 덕분에 편집자들이 이 책이 더 잘 팔리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지는 라틴 아메리카의 공포물 장르를 쓰는 작가들에게 책이 잘 팔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인식됐다. 나는 2020년 『멕시칸 고딕』의 성공 이후 이전에는 실패했던 책들이 갑자기 팔렸다고 말하는 유색인종 작가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비밀이 가득한 산속에 있는 외딴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도 있다.
라틴 아메리카 장르 소설이 마술적 사실주의로 낙인찍히면 출판업계가 더 다양한 책과 이야기를 무시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작품이 번역되거나 팔리는 것을 막도록 유도할 수 있다.
책의 카테고리 분류가 구속으로 작용해서는 안 되지만,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라벨은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해방하기보다는 때때로 목을 졸라 죽일 정도로 장르를 억압했다. 나는 이 장르에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 소설을 하나 쓴 적이 있다. 내 데뷔작인 『신호 대 잡음(Signal to Noise)』은 LP판을 사용해 주문을 시전하는 멕시코시티의 비행 청소년 세 명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 대부분은 마술적 사실주의를 혁명 이후 멕시코의 기이한 작은 마을 풍경과 연관 짓는데, 이 책은 그러한 풍경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다. 『멕시칸 고딕』 은 라틴 아메리카 붐을 만들어낸 작가들보다는 에드거 앨런 포의 발자취를 따랐던 우루과이 작가 오라시 오키로가에게 더 큰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지난해 데이비드 보울스에게 호세 루이스 사라테 작가의 책 『얼음과 소금의 길』을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도록 주선했다. 1990년대에 쓰인 이 작품은 드라큘라가 데메테르호를 타고 영국으로 항해한 것을 에로틱하고 기이하게 재해석한 것으로, 불운한 배의 선장 관점에서 쓰였다. 나는 이 소설을 영어로 직접 출판했는데, 이 책이 이전에는 불어로만 번역됐을 뿐 영어로 번역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 사용자들은 존경받는 멕시코 작가가 이 책을 썼음에도 베스트셀러가 아니기 때문에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깊은 고딕과 무성한 공포와 같은 이 책의 분위기가 편집자의 스타일에 맞지 않았으리라 추측한다. 즉, 이 책은 출판업자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기대하는 마술적 사실주의가 아니었을 것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종종 남용되고 있으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아무 생각 없이 사용된다. 내가 싫어하는 용어는 이뿐만이 아니다. 나는 내 작품이 '텔레노벨라(telenovela)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텔레노벨라는 TV와 소설의 합성어로 중남미 국가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일 연속극 장르다. 드라마 형식의 텔레비전 영상을 통해 장편 소설을 감상할 수 있다). 심지어 큰 재앙이 주인공에게 닥쳤을 때라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은 드라마라고 불리지 않기 때문에 '텔레노벨라 같다'는 말은 달갑지 않았다. 따라서 '동화와 민속 공포의 혼합'으로 설명되는 오테사 모스페그의 책 『라프노바 (Lapvona)』는 텔레노벨라가 아니라 『멕시칸 고딕』 장르다. 사람들은 텔레노벨라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쉽게 분류할 수 있고 라틴 아메리카의 미학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에 대해 좀 더 미묘하고 복잡한 대화를 나눴으면 한다. 왜 우리는 장르와 미학에 대해 광범위한 용어로 말할 수 없는가? 분위기와 질감, 혹은 범주에 속하는 것들과 범주를 거스르는 것들에 대해 왜 이야기할 수 없는가? 인간이 육식을위해 사육되는 미래를 그린 아르헨티나 작가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Agustina Bazterrica)의 책 『연한 것은 살점이다(Tender is the Flesh)』는 SF소설이지만, 공포 소설일 수도 있다. 식인풍습은 공포 소설에 오래전부터 등장했고, SF소설과 공포 소설 모두 문체가 때때로는 풍자적이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둘러싼 문제는 빠르고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유산을 가진 작가들의 다양한 책은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더 넓고 풍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느리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내년에 미국에서 자신의 책 『우리 몫의 밤(Our Share of the Night)』이 영어로 번역돼 장편 데뷔를 앞두고 있다. 출판사 펭귄 랜덤 하우스의 분류상 이 책은 '고딕과 호러'로 분류돼 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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