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포퓰리즘 극복의 원년 되기를
美공화당은 물론 영국·남미까지
극단적인 대중영합주의로 몸살
'경제 붕괴' 아르헨 반면교사 삼아
좌우 불문 포퓰리즘 덫 벗어나야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원의 다수당인 공화당이 심각한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공화당 골수 지지자들은 비겁한 당내 중도파들이 끊임없이 그들을 배신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내 극우 세력에 남겨진 유일한 해법은 새로 선출될 하원의장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건 영원한 협박과 끝없는 혼동의 레시피일 뿐이다.
공화당은 지금 대단히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뉴트 깅그리치는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이 60년 내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전 세계의 다른 많은 국가에서도 포퓰리스트들은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성공한 정당으로 꼽히는 영국 보수당 내부에 커다란 내홍을 일으킨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눈여겨보라. 영국은 2016년 이래 6년 동안 다섯 번이나 총리가 바뀌었다. 반면 그 이전의 30년 동안 다우닝 10번가의 주인은 총 다섯 명에 불과했다. 영국은 자국의 최대 시장인 유럽연합(EU) 탈퇴라는 자기 패배적 결정으로 국가 경제의 전망이 어두워졌다. 현재 영국은 주요7개국(G7) 가운데 최약체로 통한다. 또한 주요20개국(G20) 회원국 가운데 러시아를 제외하면 가까운 장래에 경제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일한 국가로 꼽힌다.
남아메리카의 사정도 비슷하다. 좌우를 불문하고 대륙 전체가 포퓰리즘에 매몰된 게 사실이지만 좌도 우도 제 몫을 다 해내지 못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재선 도전에 실패했고 당선자이자 전직 대통령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도 자신의 극단적 공약을 이행하지 못할 것이다. 칠레의 좌익 포퓰리스트들은 헌법 개정을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쳤지만 중도좌파 정치인들조차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현실성이 없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어 전체 유권자의 86%가 참여한 국민투표에서 참가자의 62%가 새 헌법을 거부했다.
지구촌 반대편에 있는 호주의 우익 정치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스타일의 정책과 수사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이들은 이민과 범죄, 약탈을 일삼는 ‘아프리카 갱’의 위험을 경고하며 전 국민을 겁먹게 한다. 그러나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실수를 범했고 경제를 성공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 최근 선거에서 호주의 보수파는 역대 최악의 손실을 기록했고 그보다 더 극단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호주 연합당과 단일 국가당도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반면 노동당의 새 총리는 역대급 지지율을 만끽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포퓰리즘은 사실 야당에 유용한 패다. 기존 질서와 제도를 비판하고 두려움과 극악무도한 엘리트 지배층에 관한 음모론을 조장하며 실질적인 프로그램보다 감정적 반응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집권당이 되면 포퓰리스트 정책의 얄팍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지도자들은 책임 회피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만약 반(反)포퓰리스트 세력이 센스와 일 처리 능력을 겸비했다면 포퓰리스트 우파의 송곳니를 뽑아낼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조 바이든 대통령의 온건한 스타일과 진중한 태도, 실질적인 정책 결정은 유권자들의 반발을 피해 가며 큼직한 입법 성과를 내는 데 기여했다. 이제 나이 든 백인이라는 사실은 바이든의 강점이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똑같은 정책을 펼쳤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 그의 위험스러운 사회주의와 비(非)미국적인 정책에 인종차별의 색채가 가미된 비판을 귀가 따갑게 듣고 있을 것이다.
포퓰리즘의 대표 주자는 늘 아르헨티나였다.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아내 에바는 엘리트를 공격하고 인민의 목소리가 될 것을 약속하며 강력한 대중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상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망가뜨렸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군 가운데 하나였던 아르헨티나는 그로부터 불과 수십 년 만에 재정 파탄의 늪에 빠졌다. 그 이후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스트들은 지킬 수 없는 공약을 남발하고 어마어마한 부채를 일으켰으며 빈번하게 채무를 이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고 경제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스트 운동이 “역대 최저점을 찍었다”고 선언했다. 에두아르도 두알데 전 대통령 역시 “오늘이 우리에게는 최악의 순간”이라며 “페론주의가 아르헨티나의 현 상황을 만들어낸 확실한 주범”이라고 못 박았다.
물론 이런 온갖 추세는 영원하지 않다. 이 세상의 복잡한 문제는 늘 간단하고 유혹적이며 잘못된 해법을 제시하는 인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2023년은 포퓰리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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