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역사…신간 '백치라 불린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영국의 한 부유한 집안 출신 패니 퍼스트는 1786년 스물두 살이 됐지만, 지능 수준은 3세 정도에 불과했다. 숫자를 스물까지밖에 세지 못했고, 날짜와 시간, 계절을 구분하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백치'라 불렀으나 적어도 온정적으로 대했다. 그러던 중 육군 중위 헨리 바우어만이 패니의 인생에 갑자기 끼어들었다. 야심 찬 젊은이였던 그는 패니를 납치해 프랑스로 도주했다.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헨리는 프랑스에서 결혼에 성공했지만, 패니 가족은 프랑스 법원에 결혼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패니는 법정에서 '프랑스에 왜 왔냐'는 질문에 "딸기와 크림을 먹으러 왔다"고 했다. 패니 가족은 승소했다.
영국 역사가 사이먼 재럿이 쓴 '백치라 불린 사람들'(원제: Those They Called Idiots)은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지적 장애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지역 사회에서 돌봐야 할 이웃으로, 인간의 진보를 위해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함께 살아야 할 사회 구성원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뀐 지적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면밀하게 추적했다.
책에 따르면 '백치'나 '치우'(癡愚)로 불린 지적 장애인들은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았다. 사회 부적응자를 격리하는 국가기관이나 시설이 따로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 사회는 이들을 유연하고 호의적인 태도로 대했다. 이들에 대해 모욕적인 표현이 난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사랑하며 수용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분위기가 바뀐 건 제국주의가 시작되면서였다. 유럽인들은 옷도 입지 않고, 오두막에 살면서 먹을 것 이외에는 별반 호기심이 없는 "미개인"을 보면서 자기 동네에 사는 "백치"들을 떠올렸다. 동물에 대한 분류를 통해 자연에 위계를 부여하고, 세계 곳곳에 대한 지식 정보가 쌓이면서 유럽인들은 점점 비유럽인들과 백치를 유사한 사람들로 묶기 시작했다.
생물학의 발달은 이런 경향을 강화했다. 찰스 다윈은 저서 '인간의 계보'(1871)에서 인류학자 카를 포크트의 논문에 근거해 "백치 위에는 열등한 인간 유형이 있고, 백치 아래에는 하등동물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학자들은 IQ 테스트로 정신결함자를 분류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심리학자 헨리 고다드는 IQ 점수를 기준으로 0~25점은 백치, 26~50점은 치우, 51~70점은 노둔(駑鈍)으로 분류했다. 나아가 지적 장애인들을 감금하거나 단종 수술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나치는 고다드의 주장을 계승했다. 나치 정권(1933~1945년)은 지적 장애인 40만 명을 대상으로 단종 수술을 단행했다. 안락사법을 도입해 유전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독살하거나 아사(餓死)하도록 방치했다. 이렇게 최대 2만5천 명을 학살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 프로그램 T4도 도입했다. 그에 따라 가스실에서 8만여 명이 살해됐다.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우생학은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100년 넘게 지역사회에서 쫓겨난 지적 장애인들이 다시 사회로 회귀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태어나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출생지 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가족과 재회하고, 직업도 갖고, 개인적인 만남을 갖는 등 자유롭게 살기 시작했다. 이들을 가뒀던 낡은 시설병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저자는 지적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제는 많은 지적 장애인들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적 장애인에 대한 가혹한 차별이 언제라도 부활할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경계의 고삐도 바짝 죄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의 사회 임무이자, 지역사회 의무는 모든 인류의 구성원에게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고, 암울한 시설 수용 조치나 끔찍한 T4 프로그램 같은 정책이 부활하여 인류를 수치스럽게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생각이음. 최이현 옮김. 416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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