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사찰] 여강의 주인공 신륵사, 신륵사의 주인공 나옹선사

이재진 2023. 1. 1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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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는 보기 드물게 강변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륵사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열반, 승탑이 세워지면서부터였다.

나옹선사(1320~1376)의 이름은 혜근慧勤, 법호는 나옹懶翁이다.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조사당은 나옹선사의 제자 각신스님이 스승의 영정을 제작한 후 이를 모시는 전각으로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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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나옹선사 '청산가'

신륵사 상공에서 바라본 여강의 전경.

신륵사는 보기 드물게 강변에 위치한 사찰이다. 사찰은 대개 깊은 산중 혹은 시내에 있는 경우가 보통인데 신륵사는 남한강변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다.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에서 금사면 전북리까지 40여 km 남한강 물길을 여강이라고 불러 왔다. 신륵사 앞을 흐르는 남한강의 별칭인 여강驪江 풍광의 주인공은 신륵사다. 신륵사의 가장 빼어난 풍광 명당은 강월헌江月軒이라는 정자다. 고려 말 나옹선사의 당호에서 딴 것으로 선사 입적 후 다비 의식이 행해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륵사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열반, 승탑이 세워지면서부터였다. 나옹선사(1320~1376)의 이름은 혜근慧勤, 법호는 나옹懶翁이다. 21세 때 문경 묘적암 요연 선사를 찾아 출가한 후 원나라로 건너가 인도에서 온 승려 지공 선사의 지도를 받고 귀국 후 고려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 하에 불교 중흥에 힘을 기울였다.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조사당은 나옹선사의 제자 각신스님이 스승의 영정을 제작한 후 이를 모시는 전각으로 세운 것이다. 1671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지금은 나옹의 스승인 지공대사와 제자인 무학대사의 초상과 함께 모셔져 있다.

조사당 바로 앞에는 수령이 600년으로 추정되는 기품 있는 향나무 한 그루가 있다. 무학대사가 스승인 나옹선사를 추모해 심었다고 한다.

옛말에 '절집의 자산은 노목老木과 노스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고승 나옹선사와 600년 된 향나무가 이 말을 증거하고 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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