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남구 용암포 - ‘바다의 토끼’ 군소를 아시나요[박수현의 바닷속 풍경](22)
2023년 토끼해가 밝았다. 바다 동물 중에도 땅 위 토끼를 연상시키는 동물이 있다. 바로 연체동물 복족강에 속하는 ‘군소’가 그 주인공이다.
아주 오래전 용왕이 큰 병이 들었다. 땅에서 온 호걸들은 오로지 토끼의 간만이 용왕을 살릴 수 있다는 처방을 내렸다. 누가 토끼를 데려올 것인가? 용맹스러운 문어 장군이 나서 보지만 결국 언변 좋은 별주부가 임무를 맡았다. 별주부는 감언이설로 꼬드겨 토끼를 용궁까지 데려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토끼는 간을 두고 왔다는 기지를 발휘해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충직한 신하 별주부가 한 번 실패했다고 임무를 포기했을까? 별주부의 언변에 넘어가 용왕에게 간을 빼주고 용궁에 눌러앉은 토끼가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바다에는 토끼를 빼닮은 군소가 있기 때문이다.
군소 머리에는 두 쌍의 더듬이가 있다. 크기가 작은 것은 촉각을, 큰 것은 후각을 감지한다. 이중 큰 더듬이가 토끼 귀를 닮았다. 그래서 어촌에서는 군소를 ‘바다 토깽이’라 부른다. 군소의 영어명이 ‘시 해어(Sea hare)’인 것을 보면 서구에서도 군소와 토끼를 연결 지은 것으로 보인다.
군소가 토끼를 닮은 것은 겉모습뿐 아니다. 땅 위 토끼가 풀을 뜯어 먹듯이 군소는 바다풀이라 할 만한 바닷말을 뜯어 먹는 데다 토끼만큼이나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군소 한 마리가 한 번에 낳는 알의 수가 1억개에 이른다. 만약 이 알이 모두 성장해 재생산에 나선다면 단 1년 만에 지구 표면은 2m 두께의 군소로 덮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알은 물고기나 불가사리, 해삼 등의 먹이로 사라진다.
박수현 수중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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