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민족주의자들의 부상

정윤미 기자 2023. 1. 10. 07: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NYT 터닝 포인트 2023]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3'이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변화의 파고를 넘어서: 디지털 세상과 세대교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조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신임 총리,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마린 르펜 프랑스 정치인 등 극우 세력들은 최근 국경을 초월한 가치 전쟁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분쟁은 서구 문명의 본질과 연관된 단일 분쟁 중 하나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2022년 8월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보수주의 연례 정치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설에서 차기 미 대선과 유럽 의회 선거가 맞물려 있는 오는 2024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르반 총리는 이 두 선거가 마치 '가치 전쟁'이라는 단일 전쟁에서 서로 다른 전선에 놓인 전쟁인 것처럼 말했다. 오르반 총리는 극우 공화당 청중들에게 "서방은 자기들끼리 전쟁 중"이라며 "우리는 서로에게서 친구들과 협력자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같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으므로 우리 군대의 활동을 통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르반 총리의 연설은 현대 민족주의의 특징인 '국제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과거 이탈리아에서 스웨덴에 이르기까지 각국 민족주의 정당들은 유럽연합(EU), 유로존, 그리고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NATO) 탈퇴를 제안했다. 다만, 상당수 민족주의 정당들도 적대감이 고조되는 이 세계에서 이 기구들이 비회원국은 누릴 수 없는 일정 수준의 경제적·군사적 안보를 회원국에 제공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 같은 다국적 기구의 회원국이 되려면 다른 국가들과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범유럽적 관점을 공유하는 정치인들은 특정 방향으로 유럽을 정의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심지어 오늘날 오르반 총리조차 자신이 헝가리의 특수한 문화적 정체성이 아니라 유럽적인 것을 옹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미권 매체는 그를 '반유럽적'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실수다. 그는 전혀 반유럽적이지 않다. 그는 자신이 좌편향적이라고 인식하는 EU의 기구들에 반대한다. 오르반 총리는 자신이 더는 반유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정부의 좌편향성을 타도하려는 공화당원들이 더 반미국적이라고 본다. 반대로 자신을 진정한 '유럽성의 수호자'로 여긴다.

빅토르 오르반(왼쪽) 헝가리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

의문은 '유럽인' 혹은 '미국인'이 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거다. 가장 악명 높은 서방 민족주의자들이 수십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참여한 행사에서 집단행동을 벌였던 사례들을 찾아보자. 이를테면, 스페인의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복스(Vox) 가 지난 2022년 1월에 기획한 마드리드 행사나 몇 달 뒤 오르반 총리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주최한 헝가리판 CPAC 등이다. 보수성향의 매체인 폭스뉴스는 헝가리 CPAC에 대해 상당 시간을 집중 보도한 바 있다.

각국 민족주의자들의 상호 조력은 연설문 교환과 긍정적 미디어 보도의 수준을 넘어선다. 헝가리 국영기관은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 마린 르펜 후보에 1,000만 유로(약 139억 1,770만 원) 이상의 선거 자금을 지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은 이탈리아의 800년 된 트리 술티 수도원에 극우 활동가들을 위한 일종의 '엘리트 양성 아카데미'를 세우려고 했다. 계획대로 운영됐다면 입학생 수용이나 교육 목표 면에서 명백히 의도적으로 국제적인 아카데미가 됐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임대차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표면상 조건을 이유로 이 기관을 폐쇄했다.

배넌의 학교는 '서구 유대-기독교 서구 아카데미'로 불리며 서구 문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원자들을 모집했다. 이 학교 명칭은 다양한 민족주의 집단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주요 세력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들 대부분은 '기독교 국가'로 묘사되는 국가적 정체성과 가치에 애착을 지니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오르반 총리는 2019년에 행한 한 연설에서 유럽이 "진정한 가치의 근원인, 기독교의 정체성으로 회귀"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오르반 총리의 정치적 동지인 멜로니 총리는 2021년 책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의 가치와 기독교적 정체성을 수호한다고 극찬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후 푸틴 대통령과 거리를 두었지만, 그와 연관된 가치들과는 거리를 두지 않았다. 보다 세속적인 프랑스의 르펜은 프랑스의 국가 원리가 궁극적으로 기독교 유산에서 파생된 자유, 평등, 그리고 동포애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독교적 정체성을 스스로 드러내는 한 가지 방법은 '이슬람교도 이민에 대한 적대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는 정신착란이다. 아마도 수 세기 동안 유럽의 역사가 기독교와 이슬람 간 갈등으로 정의됐다는 사실에 대한 격세 유전적 메아리일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에 진정한 '대결 상대'는 이슬람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적인 세속 문화다. 세속 문화는 분명히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계승이다. 이런 이유로 도덕적, 사회적 원리로 일컬어지는 관습은 계몽주의 가치로 옹호된다. 기독교와 계몽주의적 가치 체계 사이의 갈등은 국경 없는 인터넷상에서 갈수록 의심의 여지 없이 쉽게 발생한다. 이는 어디에서나 흔히 존재하는 비슷한 문제들과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갈등은 전통적 가족관을 옹호하고 기독교적 도덕성을 침해하는 개혁에 반대하는 구도로 짜여 있다. 이를테면, 동성혼 결혼, 동성 커플의 입양, 낙태, 그리고 성소수자(LGBT) 권리는 물론 역사적 사건의 관점에 대한 보수주의자와 개혁주의자 간의 대립 등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부터 플로리다 셰인트 피터스버그까지 '깨어나라 이데올로기'와 'LGBT 로비'는 이들의 적이다. 오르반 총리가 미 댈러스에 나타나서 연설했을 때 청중이 즉각적이고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국가 정치를 특징짓는 논쟁과 갈등이 표면적으로 분리된 국제 관계의 세계와 병합은 보다 비극적인 예시를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때때로 문화 전쟁이 국가 수준의 전쟁 영역으로 기괴하게 확장된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 나돌기도 한다.

저자 데이비드 살레이 (사진) 는 캐나다 태생의 작가로 영국에서 활동 중이다. 2013년 ‘그란타’가 선정한 명망 높은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 20명’에 꼽혔다.

나는 이 거대한 인간의 비극이 이처럼 하찮게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러시아 측은 자국이 이른바 서방에 뿌리내린 타락한 세속 문화에 맞서 기독교 문명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한다. 이것이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노골적이고 열렬한 지지를 표명할 수 있는 이유다.

키릴 총대주교는 실제로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다 죽는 러시아 군인들의 죄가 씻겨 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푸틴 대통령은 서구의 공공연한 사탄주의와 그들의 신앙과 전통적 가치 전복을 질타한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인들과 이들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계몽적 가치, 그리고 우크라이나 영토 보존만큼이나 그것들이 함의하는 개인적, 국가적 다양한 형태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여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많은 우파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정권에 대해 소리 높여 비난하기를 꺼린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가치 전쟁에서 자신들 편에 서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푸틴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폭력에 의지하면서 가장 큰 범죄를 저지름에 따라 그가 그들 목표에 불명예를 가져오고 신용을 떨어뜨렸으며, 적에게 상당한 도덕적 승리를 안겨줬다고 생각하지 않기가 어렵다.

younm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