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물로 전락한 '최초의 청룡열차'…노포 을지OB베어는 사라졌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 쌀쌀한 바람이 몰아치는 갈색 풀숲에 빛바랜 놀이용 열차 2대가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었다. 파란색 열차는 곳곳의 페인트가 벗겨져 공포 영화의 소품을 연상시켰다. 한때 어린이들을 태웠던 빨간색 열차는 머리 받침대가 찢긴 채 먼지와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열차 앞부분에 쌓인 낙엽을 쓸어내니 '서울미래유산'이라고 적힌 동판이 드러났다.
문화적 가치를 지녀 시가 직접 지정하는 서울미래유산이 관리 미흡으로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전시관은커녕 보관 조치도 되어 있지 않아 폐품으로 전락한 어린이대공원의 청룡열차가 대표적이다. 올해까지 지정된 서울미래유산 502개 중 관리를 위한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유산들도 위기에 처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한 켠에 놓인 청룡열차는 한국 최초의 롤러코스터다. 1973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이 개장하면서 '청룡열차'라는 이름으로 당시 어린이 놀이공원 문화를 대표했다. 파란색 청룡열차는 1984년까지, 빨간색 청룡열차는 10여년 전인 2012년까지 운행된 뒤 안전 연한을 다해 은퇴했다. 서울시는 두 열차가 갖는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해 2017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이듬해부터 놀이공원 옆에 전시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보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청룡열차는 2017년 지정됐을 때와 달리 군데군데 총탄 자국 같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공원을 찾은 대부분의 시민도 이 열차가 방치돼 있어 제대로 된 가치를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6살 딸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A씨는 "우리가 항상 말하던 그 청룡열차인지 몰랐다"며 "그냥 버려진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매주 2~3번은 어린이대공원을 찾는다는 B씨도 "누가 봐도 전시된 것은 아니다"며 "유명한 청룡열차인데 깔끔하게 관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롤러코스터가 방치된 데에는 한정된 예산 문제가 영향을 줬다. 어린이대공원이 민간 기업이 아닌 서울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시립 공원인데, 서울시에서 서울미래유산 관리만을 위한 예산을 배정받을 수 없었다. 또 최근 청룡열차를 서울생활사 박물관으로 옮기려는 작업이 무산되다 보니 복원과 관리 작업이 늦춰져 대공원의 '흉물'로 전락했다.
어린이대공원은 서울시의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올해 안에 청룡열차를 보수하고 관리할 방침이다. 어린이대공원 관계자는 "원래 주기적으로 관리를 했었으나 낡고 오래된 기구인 탓에 예산 편성에서 후순위로 밀렸다"라며 "올해에는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해 복원 작업에 들어가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으나 역사속으로 사라진 곳도 있다.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위치한 맥줏집 을지OB베어는 2018년부터 건물주와 세임자간의 임대료 갈등을 빗다 지난해 강제철거 됐다. 1980년 문을 연 을지OB베어는 OB맥주의 전신인 동양맥주가 모집한 프랜차이즈의 1호점으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1946년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터를 잡았던 중화요리집 '대성관'은 76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대성관 역시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끝내 문을 닫았다.
서울시는 서울미래유산이 방치되거나 사라져가는 상황속에서도 마땅한 대안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애초의 제도 취지가 시민·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미래유산 사업은 문화재처럼 획일적인 보존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다"라며 "시민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설공단에서 관리하는 청룡열차와 같이 공공에서 관리하는 미래유산까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가 지정한 서울미래유산에 대한 관리 책임을 개인이나 지역사회에만 떠넘긴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기 어렵다. 시민들의 보존 동참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공공이 관리하는 미래유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원형 보존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광표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울시의 미래유산이라면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만큼 노력을 기울이는 게 옳은 방향"이라며 "개인 소유라면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겠지만 공공에서 관리하는 유산이라면 원형보존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하는 명확한 기준과 관리를 위한 규칙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미래유산이든 문화재든 문화유산을 지정하는 데에는 명확한 기준을 두고 시민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끌어내야 의미가 있다"며 "(미래유산을)선정한 후에도 문화유산 관리를 위한 나름의 규칙을 정해 훼손과 멸실을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상곤 기자 gonee@mt.co.kr, 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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