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을 응원하게 될 줄은…" 집중공격에 반감·동정여론도 꿈틀
"나경원 전 의원을 응원하게 될 줄은 몰랐다"
9일 저출산고령사회부위원장인 나 전 의원의 당권 도전에 대해 대통령실의 부정적 입장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십자포화를 퍼붓자, 평소 나 전 의원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국민의힘 관계자가 한 말이다. 나 전 의원은 인지도만큼 비호감도도 상당했는데, 순식간에 고립무원 처지가 된 것을 보며 당 안팎에서 동정표가 생기고 있다. 기존 정치 문법을 초월하는 대통령실의 드라이브와 당 주류의 일사분란한 공격에 동정을 넘은 역풍 가능성도 제기된다.
나 전 의원이 지난 5일 대출탕감 저출산 정책을 언급하자 대통령실은 그 다음 날부터 나흘 동안 실명과 익명 관계자를 오가며 "대단히 실망스럽다", "국가 중대사에 대한 국민적 혼란을 불렀다" 등의 강경한 입장을 쏟아냈다. 국민의힘에서는 "만약 이런 식으로 정부와 반해 본인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예전에 '유승민의 길' 아니냐(김정재 의원)", "지지하는 현역 의원이 한 명도 없는 분이, 지금 지지율이 조금 높다고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치 행위라 볼 수 없다(박수영 의원)"는 비난이 이어졌다.
다음 날 나 전 의원이 특강에 나설 예정이었던 제주도당 방문 일정은 이날 오후 돌연 취소됐다. 나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를 촉구하는 청년당원 명의의 기자회견은, 국회 회견장을 잡아 주겠다는 의원이 없어 부탁을 들어주는 의원을 찾을 때까지 연락이 계속 돌았다. 이렇게 당심 1위를 줄곧 지켜온 나 전 의원은 하루아침에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앞서 민심에서 수위를 점한 유승민 전 의원의 당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당원 100% 투표가 도입된 데 이어, 이번에는 대통령실이 직접 당심에서 압도적인 나 전 의원 축출에 나선 셈이라 파장이 만만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기존과는 다른 게 대부분이지만, 이번에는 예상 범위를 훨씬 웃돌았다(국민의힘 초선의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한동안 조용했던 이준석 전 대표도 페이스북에 "골대를 들어 옮기는 것으로 안되니 이제 자기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며 "사실 애초에 축구가 아니었다"고 간만에 입을 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천을 앞두고 말을 아끼는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 전 의원이 의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원내대표 출신의 4선 의원인데 이런 수모까지 줄 필요가 있나 싶다(국민의힘 초선의원)", "나 전 의원이 PK지역에서 인기가 많다. 대표 나가지 말라고 조리돌림 수준으로 만든 걸 보며 동정 여론이 생길 것 같다(국민의힘 당직자)"며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유 전 의원은 대통령실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일반 여론조사에서 인기가 치솟기도 했다.
당사자인 나 전 의원은 굉장히 당혹스러워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윤 주류의 지원 아래 발 디딜 틈 없이 성황을 이룬 이날 김기현 의원의 전당대회 개소식에도 참여하지 않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숙고에 들어간 상태다. 나 전 의원과 가까운 한 여권 인사는 "나 전 의원이 주위에 조언을 구하고 여러 얘기를 듣고 있다"며 "결국 선택은 나 전 의원의 몫"이라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이 어떤 선택을 하든 쉬운 길은 남지 않았다. 퇴로조차 끊겼다. 용산과 여의도의 일사분란한 견제에도 출마를 결심한다면, 나 전 의원이 '비윤'의 정체성으로 당 대표에 도전 한다는 의미다.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친윤계 주류의 당 운영에 반감을 갖고 있는 세력을 규합해야 하는, 정권 초기에 쉽지 않은 포지션이다. 공천을 의식한 의원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반대로 출마를 포기한다면, 공천을 통해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지도자급 정치인으로서 향후 의미 있는 행보를 하기는 어려워진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나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안 나간게 아니라 못 나간 거다'라고 주장을 해도, 정치인에게 기대할 만한 것은 남지 않게 된다"며 "나 전 의원은 지금 '어떤 정치인이 될 것인가'라는 본질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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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윤지나 기자 jina13@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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