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도 2500㎞ 날아가 표적 정밀타격… 미사일 위협 뺨쳐 [심층기획 - 현대전 ‘게임 체인저’ 무인기]

박수찬 2023. 1. 1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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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피해 없이 위험작전 수행 가능
민간드론 SW·장비 구매 쉬워지자
이란·북한 중심으로 대량 생산·운용
‘가성비’ 이란 샤헤드-136 자폭드론
러 우크라 공습에 수차례 활용된 듯
北 소형기 위주 500여대 보유 예상
한국, 합동드론사령부 조기창설 계획
‘가오리 스텔스 무인전투기’ 기술 개발
중대형 이어 소형 무인기 도입 추진도
크기 2m에 불과한 소형 무인기(드론)가 한반도를 뒤흔드는 치명적 무기로 등장했다. 지난달 26일 북한 무인기 5대가 영공에 진입, 이 가운데 1대는 서울 비행금지구역(P-73)까지 침범했다. 수백억원짜리 전투기는 침투 시도조차 어려울 정도로 촘촘한 방공망을 갖춘 서울 도심을 대당 가격이 수천만원에 불과한 저가 무인기가 마음껏 휘젓고 다닌 셈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차기군단무인정찰기 모형.
무인기는 이처럼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하며 인간이 꺼리는 ‘힘들고 위험한’ 일을 대신한다. 미군 B-2 스텔스 전략폭격기 조종사들이 지상 공습작전을 수행하려면 30∼40시간에 달하는 길고 고된 비행을 해야 한다. 반면 중동 등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는 프레데터, 리퍼 무인공격기는 미 본토 기지에 있는 조종사들이 교대로 조종하는데, 이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출퇴근도 한다.

무인기는 항공 작전에서 가장 위험하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공중 정찰을 대신할 수 있다. 1960년 5월 미군 U-2 정찰기가 소련 상공에서 지대공미사일에 피격, 조종사가 생포됐다. 2001년 4월 남중국해에서 미군 EP-3 정찰기가 중국 전투기와 충돌해 하이난섬에 불시착, 승무원 24명이 한때 억류됐다. 군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운 정찰 작전에 무인기를 대신 투입하면 인명 피해를 방지하면서 정치적 부담도 덜 수 있다. 각국에서 무인기 사용이 늘어나는 이유다.

최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군용 무인기에 대한 인식이 깨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활약한 프레데터, 리퍼 무인공격기는 대당 가격이 400억원이 넘는 고가 기종이었다. 미국, 영국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무인기를 앞세워 공격 및 정찰을 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이란과 북한을 중심으로 상업용 드론 부품을 활용해 수천만원짜리 저가 소형 무인기를 대량 생산, 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농업 등에 쓰이는 민간 드론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다. 이는 치명적 성능을 발휘하는 저가 군용 무인기를 많이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성능은 다소 부족하나 단기간에 많이 만들 수 있고, 아군이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곳에도 투입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이란산 저가 무인기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을 수시로 공습하는 것도 이 같은 특성에 힘입은 바 크다.

◆“비싼 게 전부는 아니다” 이란·북한의 저가 드론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9월 자국에서 수거한 잔해를 공개하며 러시아군이 이란산 자폭 드론 ‘샤헤드-136’을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이 2021년 개발한 샤헤드-136은 무게 200㎏의 자폭 드론이다. 폭발물은 36∼50㎏이 탑재되며 최고 시속 185㎞로 날아간다. 길이가 3.5m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는다. 위력은 미사일보다 낮고 속도가 느리며 비행 소음이 커 포착·격추되기 쉽지만, 단일 표적을 향해 여러 대를 동시에 띄우거나 야간에 이륙시키면 요격이 쉽지 않다. 대당 가격이 2만달러(약 2600만원)에 불과해 순항·탄도미사일보다 훨씬 저렴하고, 최대 2500㎞를 날아가 표적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 러시아군은 샤헤드-136을 대량으로 띄워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의 전력망을 비롯한 에너지 공급 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이란이 만든 저가 무인기는 이슬람 무장세력에도 공급되고 있다. 2019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아브카이크 정유시설이 다수의 무인기 공격을 받아 원유 생산이 일시 중단됐다. 당시 예멘 후티 반군이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했는데, 후티 반군은 이란이 1990년대부터 만든 아바빌-T 무인기를 개조한 카세프-1 자폭 무인기를 제작해 아브카이크 정유시설 공격에 10여대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당 가격이 1만5000달러(약 2000만원)에 불과한 무인기로 세계 원유시장을 뒤흔든 셈이다.

이란과 긴밀한 군사교류 관계를 맺고 있는 북한도 저가의 소형 무인기를 적극 운용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5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보고에서 “북한은 1∼6m급 소형기 위주로 20여종 500대의 무인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자폭형 무인기도 소량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러시아나 후티 반군처럼 휴전선 이남의 민간 인프라를 자폭 무인기로 공격, 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란처럼 세계 각국의 저가 민수용 부품을 활용해 무인기를 만들고 있다. 2017년 5월 강원 인제군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는 중국(기체 프레임), 스위스(GPS), 체코(엔진), 캐나다(컴퓨터), 일본(카메라) 등에서 제작한 민간 장비들이 탑재됐다.

북한은 무인기 성능을 높이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2017년 인제군에 추락한 무인기를 군 당국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종은 2014년 인천 백령도에서 발견된 것과 외형상 유사하지만 성능은 개선됐다. 연료 탱크와 배터리 용량이 두 배 이상 늘었고, 엔진 출력도 증가해 항속거리가 약 두 배 늘어났다. 탑재된 카메라는 비행 조종 컴퓨터의 명령에 따라 적외선 리모컨 방식의 신호를 통해 셔터를 작동, 경북 성주군 소재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등을 촬영했다.
육군에서 정찰용으로 쓰이고 있는 RQ-101 ‘송골매’. KAI 제공
◆첨단 무인기 늘리려는 한국

한국은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대응책으로 감시·정찰과 전자전 등 다목적 임무를 수행하는 ‘합동드론사령부’를 조기에 창설할 계획이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현재 육군에서만 운영하는 드론 부대가 있는데, 합동성을 발휘할 사령부가 필요하다”며 “그에 따라 창설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창설 관련 임무는 육군 항공사령관 이보형 소장이 맡았다. 방위사업청 등에서도 근무했던 이 소장은 헬기와 무인기를 함께 운용하는 유·무인복합체계(MUM-T)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합동드론사령부에는 스텔스·전자전 무인기를 비롯한 신형 기종이 배치될 전망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방산업체가 기존에 보유한 기술과 장비를 활용, 개발 속도를 높이게 된다.

미국 등에서 실용화한 전자전 무인기는 휴전선 너머 북한 내륙 지역에서 발신되는 북한군 교신 등을 감시하고, 유사시 전파방해를 실시하는 기종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든 차기군단무인정찰기에 ADD가 개발한 전자전 관련 장비를 탑재하는 핵심 기술의 연구가 이미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KF-21과 국산 무인 스텔스전투기들이 독도 상공을 편대비행 모습을 구현한 컴퓨터그래픽. 방위사업청 영상 캡처
현재 운용 중인 군단급 국산 무인정찰기 RQ-101을 대체하고자 2012년부터 개발해 온 차기군단무인정찰기는 지난해 시험평가를 실시했으며 올해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10시간 동안 시속 160㎞로 비행하며 지상 상황을 정찰할 수 있다. 자동 이착륙과 위성 데이터링크가 가능하며, 획득한 정보를 실시간 전송하는 기능도 갖췄다.

스텔스 무인기는 탐지기술 발달로 무인기가 레이더에 포착될 확률이 높아지며 일부 선진국을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ADD가 가오리 스텔스 무인전투기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길이 10.4m, 폭 14.8m, 중량 10t으로 고도 10㎞ 상공에서 최대 3시간을 비행한다. 레이더 반사 면적과 열 방출을 최소화하는 스텔스 기술과 자율비행시스템 등이 적용된다.

소형 무인기 도입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는 군단급 무인기 등 중·대형 무인기 개발에 집중해 왔지만, 정찰·통신·드론 요격·지상 공격 등에 활용할 소형 무인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적 무인기를 파괴하는 ‘드론 킬러 드론’ 체계는 북한 무인기 대응책과 맞물려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탑재된 레이더와 근접신관으로 적 무인기를 격추하는 코요테 무인기가 개발됐는데, 군의 긴급 소요를 통한 도입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내에서도 소형 다목적 무인기 개발 움직임이 일고 있다. KAI는 지난달 20일 국방기술진흥연구소와 소형 다기능 모듈화 비행체 설계 기술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LIG넥스원 등과 함께 2026년까지 진행하는 이 사업은 정찰·통신·공격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각각의 장비를 필요에 따라 교체할 수 있도록 모듈화한 날개접이식 소형 무인기를 만드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협약을 통해 확보된 기술은 인공지능(AI) 적용 무인기 개발 등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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