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 존립 걸린 저출산 대책은 정치 소재 돼선 안 돼
저출산 대책을 놓고 대통령실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연일 갈등을 빚고 있다. 나 부위원장이 “자녀 출산 시 대출 이자뿐 아니라 원금까지 탕감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자 대통령실은 곧바로 “정부 기조와 다르다”며 공개 반대했다. 나 부위원장이 “돈 없이 해결되는 저출산 극복은 없다”고 하자 대통령실은 “대통령과 전혀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저출산위 위원장은 대통령이다. 부위원장은 대통령의 지휘를 받아 정부 부처를 조율하고 인구·저출산 대책과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나 부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출하며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례적이고 볼썽사납다.
대출 탕감은 헝가리가 도입한 제도다. 40세 이하 부부가 아이를 낳기로 약속하면 정부가 최대 4000만원을 대출해 준다. 5년 내에 자녀를 1명 출산하면 이자를 면제하고 2명을 낳으면 대출액의 3분의 1, 3명을 낳으면 전액을 탕감해 준다. 헝가리는 이런 다양한 정책으로 합계 출산율을 2011년 1.23명에서 2020년 1.56명으로 올렸다. 하지만 대출 탕감에 연 4조원 이상의 예산이 든다. 돈 풀기로만 출산율을 올릴 수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지난달 말 인구미래전략 차관회의 때 발표된 내용엔 이 방안이 없었다. 대통령실은 “총리실과 기재부가 반대했는데도 개인 의견을 발표했다”고 했다. 막대한 돈이 드는 일을 위원장인 대통령과 상의나 내부 조율 없이 부위원장이 혼자서 내놓았다는 건가. 대통령실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또한 부적절하다. 이 정도 문제도 내부 조율이 안 되나. 결국 감정싸움이 선을 넘어서 나 부위원장 해임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나 부위원장의 여당 대표 선거 출마 문제가 있다고 한다. 나 부위원장이 중대한 국가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당대표 선거에 나간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애초에 저출산위를 맡지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실이 이에 대한 불만으로 나 부위원장을 공개적으로 연일 비판하는 것도 너무 정치적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합계 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 최악이다. 이대로면 성장은커녕 나라가 무너질 지경이다. 그런 나라의 대통령실과 담당 책임자가 이 중대 문제를 정치 소재로 삼고 있다니 개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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