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여기 핵탄두 계속 가졌다면... ‘우크라이나’서 배운다[김대중 칼럼]

김대중 칼럼니스트 2023. 1. 10.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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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서 독립 후 우크라가 갖고 있던
2000여기 핵탄두 계속 가졌다면
러시아의 침략은 없었을 것이다

북한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전쟁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 1년간 하루가 멀다 하고 쏘아 올린 수많은 미사일과 핵 시설 과시는 단순한 불꽃놀이용(用)이 아니다. 그 전쟁 준비 완료의 신호탄이 드디어 무인기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 서울 상공까지 넘나들었다.

2022년 11월 18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김주애의 손을 잡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시험발사장을 찾았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초강력적이고 절대적인 핵억제력을 끊임없이 제고함에 관한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최우선 국방건설 전략이 엄격히 실행되고있는 가운데 1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략 무력의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진행되었다"고 밝혔다/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그동안 북한의 미사일 쇼를 손 놓고 구경만 하던 우리는 무인기에 놀라더니 금세 내부 총질로 돌아섰다. 서울이 뚫렸느니, 그동안 훈련 안 해서 그렇다느니 하는 정치 공방에 여념이 없다. 당국이 무인기 맞대응을 언급하자 좌파는 어이없게도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했다.

북한의 미사일 쇼에서 공포감 또는 패배감을 느낀 우리 국민은 얼마나 될까? 겁이 없는 것인지 무감각인지 ‘설마’인지 종잡을 수 없지만 우리는 대체로 덤덤하다. 북한이 동족인 우리를 쏘지는 않겠지 하는 막연한 방심도 있고, 자기 백성도 잘 못 먹이면서 무슨 여력이 있어 미사일을 수십 발씩 쏘아대느냐는 제3자적 관점도 있다. 대북 평화주의자들, 북한 포용론자들은 미국이 위협하고 있는데 북한이라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북한을 감싼다. 찬·반 간에, 강·온 간에 북한 핵이 우리의 턱밑까지 치받고 올라온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저런 해설이나 하면서 남의 불 구경하듯이 팔짱 끼고 있을 것인가. 우선 동북아시아의 대립 구도를 보자. 북한과 북한의 우호국인 중국, 러시아 등 3국 모두가 핵을 가지고 있다. 그에 대립해 있는 한국과 일본, 미국 등 3국 중 미국만 핵보유국이다. 게다가 미국은 미국 대륙 또는 자국 영토가 핵 공격을 당하지 않는 한 핵을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핵이 없지만 비상시 가장 빨리 핵을 ‘조립’할 수 있는 핵 잠재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결국 이 엄중한 동북아의 6자(者) 대립 구도에서 오로지 한국만 핵 없는 ‘빈손’ 외톨이다. 그런데도 오로지 미국 핵만 믿는 책상머리의 평화주의자 또는 비핵파뿐이다. 북한이 오직 한국을 대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그에 대응한 미국의 핵 보복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미국은 세계적 핵 확전으로 갈 것을 두려워할 것이고 일본은 자기 방어에만 몰두할 것이다.

적어도 그 정도는 북한의 김정은도 꿰뚫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고 정치 불안이 조성되는 경우, 김정은은 비교적 폭발성이 작은 남쪽으로 총구를 돌릴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국은 미국만 믿고, 아니면 김정은의 선심(?)만 믿고, 거기다가 무엇보다 한국이 세계 몇째 ‘잘사는 나라’라는 추켜세움에 들떠 평화 무드에 빠져 있다.

김정은은 일단 전쟁을 일으켜 땅따먹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뒤 휴전을 유도하는 제2의 ‘6·25전쟁’ 방식으로 갈 수도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도 전쟁이 1년 가까이 지속되자 유럽 쪽에서 ‘코리아식(式) 정전’으로 가자는 휴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하원의 다수당인 공화당에서도 유화론이 나오고 있다. 세계의 식량난·가스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전쟁은 이처럼 강대국에 유리하게,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쪽,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쪽에 유리하게 이끌려가는 것이 그 속성이다.

한국이 현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핵을 갖겠다고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하고 핵 발전에 필요한 어떤 형식의 도움(우라늄 확보)도 국제적으로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또 일본·대만 등 주변 국가의 핵무장이 제기될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핵 확산의 고삐가 풀릴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국제적 제약 때문에 북의 핵은 기정사실화되고 우리는 그 그늘에서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하는 핵 노예 신세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핵을 갖겠다고 하는 것은 핵을 사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핵 굴종 사태를 면하기 위한, 그야말로 ‘핵 방어용 핵’ 또는 ‘핵 억지용 핵’의 의미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한국이 보유할 수 있는 핵무기의 기능이나 성능을 원천적으로 방어용으로 제어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이제 한국이 여러모로 발전해 세계 5~6위 안에 드는 잘사는 나라라며 칭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막상 군사력 측면에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그래도 핵을 가질 위치에 있지 않다’는 식으로 제동을 거는 것은 엄연한 위선이다. ‘우리는 되고 너는 안 된다’는 우월감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암암리에 핵을 공인받고 있는 나라(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등)도 있다. 한국은 핵을 가질 만큼 성숙했고 그것을 관리하고 제어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1991년 구(舊)소련 해체와 더불어 독립하면서 그들 땅에 보유하고 있던 미사일 176기와 핵탄두 2000여 기를 전부 포기하지 않고 일부라도 유지하는 쪽으로 갔더라면 오늘날 러시아의 침략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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