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커피 공화국’
1898년 덕수궁, 고종은 저녁 식사 후 올라온 커피를 한모금 마시곤 맛이 이상해 내려놨다. 공금 횡령 혐의로 유배형을 받은 친러파 통역관이 앙심을 품고 궁중 요리사를 사주해 커피에 아편을 넣은 것이다. 커피를 많이 마신 세자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시름시름 앓았다. 이 사건 후 척화파 대신 최익현은 “산해진미라 하더라도 외국 음식은 일절 먹지 말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하지만 한 세기 만에 커피는 한국인의 국민 음료가 됐다. 커피믹스가 대세였던 한국에 ‘원두커피’ 문화를 확산시킨 일등 공신은 스타벅스다. 1999년 이화여대 앞에서 1호점을 연 스타벅스는 스세권(스타벅스가 자리 잡은 상권)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커피 산업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스타벅스의 성공에 자극받은 국내 자본들이 앞다퉈 토종 브랜드를 선보이며 커피 브랜드 백가쟁명 시대를 열었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유난하다. 연간 커피 소비량(2020년 기준)이 프랑스(551잔)에 이어 2위(367잔)로, 세계 평균(161잔)의 2배 이상 커피를 즐기고 있다. 인구 100만명당 커피점 수도 한국이 1384개로 일본(529개), 미국(185개)보다 훨씬 많다. 4개 편의점 체인에서만 연간 5억잔 이상 분량의 원두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 커피 원두 시장에서 무시 못할 큰손이 됐을 것 같다.
▶적은 창업 비용과 낮은 기술 장벽 덕에 커피점은 인기 있는 창업 아이템이다. 하지만 대박을 기대하긴 어렵다. 스타벅스 기준 5000원짜리 커피 한잔 값은 대개 원두 값 1000원, 인건비 1500원, 임차료 1100원, 세금 750원과 마진 650원으로 구성된다. 저가 커피점 경우 원두 1㎏으로 커피 50잔을 뽑아내 잔당 2000원 정도에 판매한다. 인건비, 임차료를 최대한 낮추면 잔당 300원 정도(마진율 15%)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2021년 프랜차이즈 통계에 따르면, 커피점 평균 연매출은 1억7900만원이다. 마진율 15%를 적용하면 연수익은 2700만원 정도다.
▶커피의 국민음료화와 더불어 한국형 카페 문화도 생성되고 있다. 스터디 카페, 애견 카페, 북 카페, 빵 카페 등 ‘카페화’한 신종 업종이 생기고, 카공족(카페에서 공부), 카페 맘, 홈 카페족(에스프레소 머신, 로스터 등을 갖춘 커피 마니아) 등 새로운 도시인 유형까지 만들어낸다. 지난해엔 커피 수입액이 처음으로 10억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전년 대비 45%나 급증했다. 이런 고성장 업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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