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기다리며
어느덧 2023년 새해가 밝은지도 열흘이다. 여느 때 같으면 희망과 기대로 한껏 부풀 시점이지만, 지구촌은 경제 문제로 우울하다.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경기 침체 공포로 시한폭탄을 껴안은 것처럼 위태롭다. 여기에 끝 모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천정부지로 치솟는 에너지 대란까지 겹쳐 있다. 세계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이 언제 걷힐지 모른다는 점이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어둠 속에도 빛은 있고, 위기는 창조의 밑거름이다. 세계 경제의 과거 역사는 이를 잘 말해준다. 반세기 전, 세계 경제는 지금과 흡사했다. 2차 대전 후 고속 성장하던 세계 경제는 1970년대 중반 중동전쟁에 발목이 잡혔다. 고유가 인플레이션 고금리의 장기침체가 덮치면서 세계 경제는 장기간 신음했다. 당시 미국의 정책금리는 10%를 넘고, 성장률은 수년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세계 경제는 제조업과 금융업이 붕괴하면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듯했다.
세계 경제가 암흑의 터널에서 헤매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성지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 산타클라라에 이르는 온화한 기후의 실리콘밸리에는 버클리, 스탠퍼드 같은 명문대가 운집해 수재들이 넘쳐났다. 청년 천재들은 밤마다 어두운 창고에 모였고 인류 문명을 뒤바꾼 IT혁명이 일어났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래리 엘리슨, 레너드 보삭, 짐 굿나잇 등이 주인공들이었다.
IT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한 벤처기업들은 인터넷과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타고 세계 경제의 트렌드를 바꿨다. 때마침 미국 그린스펀 연준 의장의 저금리정책은 실리콘밸리에서 몰아친 벤처 붐에 기름을 부었다. 벤처기업으로 쏟아져 들어온 막대한 자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산업지도를 바꾸는 동력이 됐다. 실리콘밸리 열풍은 IT산업을 세계 경제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벤처 붐은 과잉공급의 장벽에 막혀 21세기 초반 버블붕괴의 위기를 맞았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스티브 잡스였다. 독선적 성격 탓에 한때 자신이 세운 회사를 떠나기도 했던 잡스는 벤처 열풍 붕괴로 엄습한 세계 경제의 위기상황을 한방에 되돌렸다. 그가 들고나온 ‘아이 폰’이라는 혁신적 상품이 주인공이었다. 아이 폰은 당시까지 통신수단에 불과했던 ‘모바일 폰’의 개념을 정보통신의 집합체인 ‘핸드폰’으로 바꾸었다. 컴퓨터 데스크 탑을 손 안에 옮긴 아이 폰은 ‘창조적 파괴’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다.
아이 폰은 단순히 IT산업의 발전에 그치지 않았다. 아이 폰 효과는 제조업은 물론 인터넷 미디어 디자인 금융 서비스에 활력을 불어넣어 그야말로 모든 전후방 산업을 재도약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경제학자들은 아이 폰이 지구촌 경제의 성장가치를 대기권에서 성층권으로 확대시켰다고 말할 정도였다. 장거리 이동통신을 위한 우주개발 산업과 위성산업이 급성장했으니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하지만 잡스는 불행하게도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타계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창조적 혁신의 아이콘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세계 경제계에는 잡스 타계 이후 혁명적 신제품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아이 폰의 유산을 보완하고 유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세계 경제의 역사를 보면 혁신과 전진이 정체하면 반드시 위기를 맞았다. 지금 세계 경제가 직면한 위기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위기를 타개할 혁신적 창조물이 머지않아 출현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 실리콘밸리에서 타올랐던 IT혁명처럼 어디선가 또 다른 열정이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경기침체가 깊을수록 창조의 시계는 더욱 빨리 돌아갈 것이다. 전기차 수소차 신재생에너지 드론 로봇 등과 같은 미래 산업이 빠르게 진화하는 것도 그런 조짐의 하나다.
인류문명의 자취를 보면 작은 변화에서 출발해 창대하게 진화해왔다. 어쩌면 2023년 새해가 세계경제 역사에서 또 다른 변화의 출발점이 될지 모른다. 당연히 대한민국에서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조의 주인공이 나타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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