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146번 버스와 노동개혁
새해 첫날 146번 버스 첫차에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 탔다. 한덕수 총리다. 146번 버스는 강남지역으로 일하러 가는 강북지역 청소노동자와 경비노동자가 주로 이용한다. 노동자들은 총리를 만나자 의외의 부탁을 했다. 첫차 시간을 4시5분에서 3시50분으로 15분 당겨달라는 거다. 모두가 잠든 새벽 4시5분에 버스를 타고 출근해도 청소 일을 제시간에 마치기 어려우니 더 일찍 버스를 탈 수 있게 해달라는 호소다. 청소노동자들은 보통 새벽 5시에 전날 쌓인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6시엔 화장실, 7시엔 사무실 청소를 시작해 직원들이 출근하는 8시 전에는 청소를 말끔히 끝내야 한다. 청소노동자에게 새벽시간 1분이 1시간처럼 소중한 이유다. 이야기를 들은 총리는 서울시장에게 곧바로 전화해 첫차 시간을 15분 앞당길 수 있냐고 물었다. 서울시장은 협조하겠다고 답했고 승객들은 박수를 쳤다.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한 참 정치인이라는 칭찬과 청소노동자와 버스노동자의 근무시간을 늘린다는 비판이 함께 나왔다. 이상적 주장이나, 정치적 논쟁을 자제하고 현장노동자의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해준 사건으로 보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그 ‘현실’이다.
근로계약서상 청소노동자의 업무시작 시간은 6시다. 그러나 임직원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할 수 있기 때문에 5시에 출근한다. 비용적 문제도 있다. 근로계약서상 5시 출근이면 1시간의 야간근로수당이 발생한다. 부당한 현실이지만 입바른 말을 했다가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모두 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항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법과 제도로 해결할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에, 사장님의 불법을 묵인하는 합의를 통해 저임금노동시장이 돌아간다.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와 협력해 건물관리업 종사자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부당한 경험을 당한 경우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냥 참고 지낸다’고 답한 노동자가 39.8%나 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버스 첫차 시간을 앞당기는 것 말고는 ‘현실’적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흔히 청소노동자들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노동자라고 부르는데, 청소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총리 정도의 막강한 권력자도 자신의 노동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투명정치인처럼 보였을 테다.
총리가 버스 첫차 시간을 15분 앞당기려고 한 것은 단순히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새벽같이 일하는 부지런한 노동자를 돕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해결하겠다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대표적 피해자인 간접고용 노동자의 불법적 공짜 노동을 총리와 서울시장이 나서서 장려해준 셈이다. 총리는 서울시장이 아니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비정규직 노동현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부탁해야 했다. 놀랍게도 총리는 146번 버스에서 내린 후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선이 틀렸다. 정부가 원청기업과 용역회사가 청소노동자를 값싸게 부려먹는 걸 막고 노조가 원청과 협상할 수 있게 보장하는 제대로 된 노동개혁을 한다면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나서서 노동개혁버스에 탈 것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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