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우의 정치人] ‘민심 1위’ 유승민과 ‘당심 1위’ 나경원의 선택

윤호우 기자 2023. 1.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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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향한 당 안팎의 시선이 유승민 전 의원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두 사람의 출마가 최대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러 여론조사에서 유 전 의원은 전체 지지율에서 1위를 차지했고,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나 부위원장이 1위를 달렸다. 그런데 이들 민심 1위, 당심 1위 후보들이 선뜻 출마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윤호우 논설위원

국민의힘은 지난달 당원투표 결과를 100% 반영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30% 반영이 없어지면서 이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던 유 전 의원이 불리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100% 당심 반영으로 기세를 올리던 나 부위원장의 출마가 암초에 부딪혔다. 지난 5일 신년기자간담회에서 저출생 대책으로 제시한 ‘대출 탕감’ 방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나 부위원장의 전대 출마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윤석열 대통령의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지지율에서 선두를 달리는 유승민·나경원 두 사람이 전대 출마를 망설이는 모습은 ‘윤심(尹心)’을 놓고 얽히고설킨 여당의 현 상황을 잘 말해준다. 김용태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8일 두 정치인을 향해 “더 이상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같은 키워드가 정치권에 도배되지 않도록 출마 여부를 빠른 시일 내에 확정해달라”고 촉구했다.

두 사람의 이력은 보수당의 대표로 손색이 없다. 집안 좋고 학벌 좋은 이들은 미국 유학(유승민)에 판사 경력(나경원)까지 더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대선 후보가 이들을 영입한 이유이다. 이들의 본격적인 정치 데뷔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대선 승리로 첫발부터 삐걱거리는 듯했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 둘은 나란히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한다. 이후 유 전 의원은 ‘친박’, 나 부위원장은 ‘친이’의 길을 걷는다. 지난 20여년의 행보를 보면, 유 전 의원이 당의 주류와 다른 길을 선택해 고난을 겪었다면 나 부위원장은 비교적 큰 풍파 없이 무난한 길을 걸었다. 유 전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다 친박에서 내쳐지면서 박근혜 정권에서 둘은 ‘비박’으로 한데 묶이게 된다.

지난 대선에서 유 전 의원은 경선에 출마해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나 부위원장은 ‘친윤’ 쪽에 섰다. 그런데 3·8 전대를 앞두고 두 정치인은 똑같이 ‘친윤’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당 안과 밖에서 인기를 얻는 두 사람이 이를 바탕으로 당대표가 되면, 친윤들로서는 급속도로 레임덕에 빠질까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근혜씨 탄핵 직후 때처럼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에서 비슷한 처지가 된 셈이다.

윤심은 김기현 의원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직 장관 정치인들의 전대 불출마에 이어 윤핵관인 권성동 의원의 불출마 선언, 나 부위원장에 대한 견제, 친윤파들의 김 의원 지지 등 일련의 일들이 이를 가리키고 있다. 내년 총선의 공천을 노리는 현역 의원들이 이런 낌새를 모를 리 없다. 이른바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의 세 불리기 여부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이다.

하지만 대표 선거가 윤심이나 윤핵관들의 뜻대로 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김 의원은 아직도 대중적인 인지도나 인기에서 유 전 의원이나 나 부위원장에 미치지 못한다.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9일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라는 산도 넘어야 한다.

2021년 전대에서는 30대의 이준석 전 대표가 돌풍을 일으키며 나 부위원장을 눌렀다. 대선에서 민주당을 이기기 위한 보수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됐다. 일찍이 보수당에서 이런 선택은 없었고, 이는 대선 승리로 귀결됐다.

올해는 선거가 없는 해다. 내년 총선은 1년이나 남았다. 당장 민심에 구애할 필요가 없는 시기로 판단했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당심 100% 반영이라는 룰 개정을 밀어붙이고, 영남 출신 후보를 세우기 위한 교통정리에 나선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총선 승리가 화급한 현안으로 닥치지 않은 전대, ‘보이지 않는 손’이 특정 후보 지지를 유도·압박하는 독특한 선거판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뭐래도 윤석열 정부와 당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지배하고 있다. 이 속에서 보수당의 대표가 되고자 하는 유 전 의원과 나 부위원장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윤심 압박이 커질수록 정당민주주의는 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의 갈 길과 비전에 대한 토론은 없이 줄세우기만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렇게 대표 선거를 치러놓고 다음 총선에서는 무엇을 내세워 유권자를 설득할 것인가.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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