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난문자 오남용, 위기대응 메시지 불신 키운다
서울시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1월2일 오후 9시4분 “4호선 삼각지역 상선 당고개방면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타기 불법시위로 무정차 통과하고 있습니다. 열차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긴급 재난 알림문자를 송출했다. 재난문자방송의 취지 및 법적 사용기준을 고려했을 때 해당 시스템을 오용 및 남용한 결정으로 봐야 한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재난문자는 사람의 생명, 신체 및 재산에 대한 피해가 예상되면 그 피해를 예방하거나 줄이기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경찰이 이미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시위가 어떠한 구체적 신체나 재산상의 피해를 초래하는지 매우 불분명하다. 해당 열차 승객들과 역사 입구 앞 안내문을 통해 직접 발길을 돌릴 시민들에게 안내했어도 충분했을 사안이다. 열차 고장 등 서울교통공사 자체의 과실로 초래된 시민 불편에는 같은 종류의 재난 안내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서울교통공사의 문자는 또한 임의로 시위의 성격을 재난으로 규정한다. 재난문자는 재난의 경중에 따라 위급재난, 긴급재난, 안전안내로 구분해 송출되고 있는데 위급재난은 공습, 경계, 화생방 등에 대한 경보이며 긴급재난은 테러, 방사성물질 누출 예상 등에 대한 경보이다. 서울교통공사의 문자는 안전안내 문자로서 위급·긴급 재난을 제외한 재난경보 및 주의보인데 이는 삼각지역에서의 시위를 ‘재난’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기준을 일반적으로 적용한다면 당국은 집회와 시위를 재난으로 취급해 대응해야 하며 시민들은 교통 불편을 초래하는 모든 종류의 집회와 시위에 대해 재난문자를 수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안에서 ‘불법’은 법원의 판단이 아니라 다분히 서울교통공사 측의 가치 판단이 담긴 자의적 해석이다. 해당 표현의 사용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의 취지를 무시한 채 그 성격을 불법·합법이라는 일차원적 틀에 맞춰 일방적으로 규정할뿐더러 재난의 피해를 줄인다는 재난문자방송의 취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당국이 시위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시민의 적대감을 키우려는 정치적 선동에 재난문자방송을 오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재난문자는 긴급 위기상황에서 시민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안전을 지키는 데 사용해야 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이자 공공재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며 지자체마다 범람하는 재난문자 속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있었고 이로 인해 실제 긴급상황에서 재난문자의 효과가 약해졌다는 우려가 이미 짙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적 성격이 짙은 재난문자의 사용은 무뎌짐을 넘어 재난 메시지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이다. 정해진 용도를 벗어난 재난문자 오남용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와 검증이 시급하다.
송환석 퍼듀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리스크커뮤니케이션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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