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아버지와 어색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오세혁 극작가·연출가 2023. 1.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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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없이 살던 25년 전, 치통 견디다 금니하러 병원 가던 날
치료비 마련 못한 아버지 “며칠만 있다 와도 되냐고 여쭤볼래?”
나는 헛기침하며 말했다 “좀 지켜보고 금니 씌우는 게 낫겠대”
/일러스트=이철원

고3 여름, 집에 전기가 끊긴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던 집에서 한 달이 넘게 전기 없이 살았다. 원래도 집이 어려웠지만 때마침 아이엠에프(IMF) 외환 위기였다. 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켤 때마다 아이엠에프를 얘기했다. 때마침 촛불이 환해서 아버지 얼굴이 잘 보였다. 아이엠에프를 말하는 아버지의 표정은 늘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그 표정을 바라보는 게 어색해서 나도 늘 아이엠에프를 얘기했다. 같은 동네 누구는 이사를 갔고, 같은 반 누구는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래도 나는 아직 집에 살고 있고, 아르바이트를 안 해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아버지도 그런 내 표정을 바라보기 어색했는지, 말없이 촛불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 침묵이 쑥스러워서, 나도 말없이 촛불을 지켜보았다. 촛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꽤 컸다. 다행히도 그 소리 때문에 두 사람의 침묵은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에 내 이빨이 아프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어색하지 않게 계절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하필 아이엠에프 시기에, 하필 전기가 끊겨서 촛불을 켜던 시기에, 너무나도 야속하게 한쪽 어금니가 썩고 있었다. 이빨은 시도 때도 없이 욱신거렸다. 다른 때는 그나마 참겠는데 밥을 먹을 때 그쪽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송곳에 찔린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필 여름방학이었고, 아버지랑 집에서 단둘이 밥을 먹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내 인생 최고의 연기를 펼쳐야 했다.

입속에서 어금니가 내 신경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하고 있어도, 태연한 표정으로 밥을 씹어야 했다. 때때로 티가 안 나게 찬물로 입을 헹구며, 조금이라도 진통이 가시기를 빌었다. 조금만 견디면 개학이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더 이상 아버지 앞에서 어색하게 연기할 일도 없었다. 아마도 내 어금니는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신경을 쑤셔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너무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찬물을 입에 물고 있어도 가시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치약을 한가득 발라도 마찬가지였다. 침대에 엎드려 양손으로 턱을 주무르며 밤새 끙끙 앓았다.

다음 날, 내 한쪽 볼은 붕어빵처럼 부풀어 있었다. 아버지는 놀란 얼굴로 내 손을 붙들고 치과에 데리고 갔다. 의사 선생님은 혀를 끌끌 차며 엄청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냐고 물었다. 하루라도 빨리 금니를 씌워야 한다고, 아마도 견적이 꽤 나올 거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토록 화난 표정의 아버지는 처음이었다. 값은 신경 쓰지 말고 당장 치료를 해달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어금니의 썩은 부분을 한참 갈아냈다. 이빨 본을 뜨고 며칠 후에 금니를 씌우러 오라고 했다. 금니 계산은 그때 해도 된다는 얘기와 함께.

갈려진 어금니 때문에 밥을 먹을 때마다 한쪽으로만 씹기가 어색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제 금니를 씌우면 돌도 씹어 먹을 수 있다며, 그때까지 먹고 싶은 것을 잔뜩 생각해 놓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번쩍이는 금니를 씌우고, 아버지 앞에서 보란 듯이 이것저것 씹어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치과에 다시 가는 날은 개학 며칠 후였다. 점심시간에 아버지가 학교 앞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나는 오늘만을 기다려왔다는 표정으로 일부러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아버지의 표정이 그날 따라 어색했다. 치과로 함께 걸어가는 내내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병원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한동안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올라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며칠만 더 있다가 와도 되냐고 여쭤볼래?” 홀로 계단을 오르며, 아버지의 표정이 왜 그토록 어색했는지 깨달았다. 아버지는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었다. 치과 입구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내려갔다.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좀 더 상태를 지켜보고 금니를 씌우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시는데…” 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또다시 헛기침을 하며 길을 나섰다. 나도 헛기침을 하며 아버지를 따라갔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아이엠에프였고, 때마침 나 혼자 병원에 올라갔고, 때마침 아버지가 확인하지 않았으니까. 비록 한쪽 어금니는 시커먼 구멍처럼 사라졌지만, 아직 촛불을 켤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촛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꽤 클 테니,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 어색함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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