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福 짓는 토끼
새해는 계묘년(癸卯年) 토끼의 해다. 토끼는 옛날부터 지혜롭고 다복한 동물로 인식되어왔다. 우리 설화 속에선 용왕의 병을 낫게 하는 ‘토끼의 간’이나 달에서 방아를 찧는 이야기 등 다양하고 친근한 존재로 나온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달 속 토끼를 찾아보며 “와~ 토끼가 떡방아를 찧네!”라고 한 기억도 있다. 하지만 고대 설화 속 토끼는 떡이 아닌 ‘약방아’를 찧는다. 먹으면 죽지 않는 불사약인 선단(仙丹)을 짓는 것이다. 달토끼가 애써 약을 찧기 때문에 세상에 복이 내린다고 하니 ‘복 짓는’ 토끼인 셈이다.
장생불사(長生不死)를 기린 달토끼는 통일신라 시대 유물 ‘달과 토끼무늬 수막새(처마 끝 마지막 기와)’를 비롯해 조선 왕실 유물인 ‘은주전자’에도 새겨져 있다. 우리 옛 궁궐에서 토끼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표적으로 창덕궁 대조전 후원 굴뚝에 토끼 문양이 있다. 강한 번식력이 특징인 토끼를 통해 왕실의 번창과 풍요로움을 기원했을 것이다.
명승 ‘남원 광한루원’의 누각 광한루에는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을 엿볼 수 있는 토끼가 있다. 거북이 등에 올라탄 토끼 조각은 용궁을 오고가는 형상 같다. 춘향사당에도 토끼가 있는데, 지혜를 품은 광한루원 토끼들은 자세히 살펴야 그 앙증맞은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경주 봉서산 자락 원원사지에는 가장 이른 시기 석탑에 조각된 십이지신상 토끼가 있다. 국보 ‘경주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자리한 이 옛 절터는 통일신라 시대 호국사찰로 명랑법사와 김유신의 흔적을 품고 있다. 두 탑에 새겨진 토끼는 동편 방위신(方位神)으로, 수천년에 이른 ‘수호 정신’을 전해준다.
십이지 중 넷째 동물 토끼를 뜻하는 한자 ‘묘(卯)’는 문을 활짝 연 형상으로 생동감이 있다. 2023년이 되자 토끼를 빗댄 인사가 넘쳐난다. “건강과 행복 두 토끼를 잡는 해”란 덕담 속에 토끼의 해 ‘안녕(安寧)’을 기원한다. 그 마음으로 오랜 염원이 깃든 국가 유산 속 토끼를 찾으니, 상서로운 기운이 봄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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